디지털 세상에서 정보는 권력이고, 접근은 권리다. 스마트폰을 통해 복지 서비스를 신청하고, 키오스크로 식사를 주문하며, 유튜브로 건강 정보를 얻는 오늘날,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은 단순한 편의의 차원을 넘어서 생존과 직결되기도 한다.
그러나 고령층을 비롯한 디지털 소외계층은 이 과정에서 가장 큰 배제를 경험하고 있다. 정보는 넘치지만, 그 정보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설명해주는 콘텐츠는 턱없이 부족하다.
“TV에서 QR코드 찍으라는데 그게 뭐죠?”
“앱을 깔라고 했는데 어떤 앱을 깔아야 하죠?”
“건강보험공단에서 문자가 왔는데 어디로 들어가야 하나요?”
이러한 질문에 응답할 수 있는 콘텐츠는 존재하는가? 더 중요한 것은, 이 콘텐츠를 누가 만들고, 어떻게 전달해야 어르신들에게 실제로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이 글에서는 디지털 소외계층, 특히 고령층을 위한 콘텐츠가 어떤 방향으로 기획·제작·배포되어야 하는지, 구체적 사례와 함께 실질적인 개선 방안을 정리해본다.
디지털 소외계층 어르신에게 필요한 콘텐츠의 유형과 특징
디지털 소외계층 중 상당수는 단순한 기술 사용법보다, '생활에 밀접한 정보'를 원한다. 복지 정보, 병원 예약 방법, 금융 사기 예방법, 건강 관리법, 교통 정보, 영상통화 활용법, 스마트폰 기초 설정 등은 어르신들에게 가장 수요가 높은 콘텐츠 주제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이 콘텐츠는 어떤 형태로 구성되어야 할까?
첫째, 문장이 짧고, 용어가 쉬워야 한다. ‘앱을 실행하세요’가 아닌 ‘스마트폰에서 그림을 누르세요’처럼 구체적이고 직관적인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둘째, 큰 글씨와 명확한 그림 중심이어야 한다. 시력이 낮은 어르신을 고려해, 18~22포인트 이상의 글자와 대비가 강한 색상, 실제 화면 캡처 기반의 설명이 효과적이다.
셋째, 순서대로 따라 하기 방식이 중요하다. ‘1단계: 전원 켜기 → 2단계: 화면 잠금 풀기 → 3단계: 카카오톡 누르기’처럼 정확한 번호와 단계별 안내가 포함되어야 한다.
넷째, 반복 시청 또는 출력 가능한 자료로 제공되어야 한다. 어르신은 한 번 보고 따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영상은 짧고 반복 가능하게, PDF는 인쇄 가능한 구조로 제공되어야 한다.
요컨대, 콘텐츠는 어르신의 학습 특성과 생활 습관을 반영한 ‘슬로우 콘텐츠’, 즉 빠른 정보 전달이 아닌, 느린 이해와 반복 학습을 중심으로 설계돼야 한다.
디지털 소외계층 콘텐츠, 누가 만들어야 하는가?
디지털 소외계층을 위한 콘텐츠 제작은 일반적인 디지털 콘텐츠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이 콘텐츠는 단순히 정보 전달을 넘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윤리적 책임과 감수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누가 만드는가’는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첫째, 공공기관이 주도하되, 현장 전문가와의 협업이 필수적이다. 지자체, 교육청, 복지기관 등은 예산과 행정력을 가지고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으나, 실제 어르신과 상호작용해본 디지털 강사, 복지사, 주민센터 직원 등과 공동기획하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이들의 ‘현장 언어’가 반영되어야 진짜 필요한 콘텐츠가 만들어진다.
둘째, 디지털 튜터 및 청소년 멘토링 그룹이 직접 제작에 참여해야 한다. 어르신과 함께 수업을 해본 경험이 있는 튜터는 어떤 방식으로 설명하면 이해가 빠른지, 어떤 기능에서 가장 많이 막히는지를 잘 알고 있다. 이들이 참여해 예시 대화, 오해 사례, 대처법 등을 포함한 콘텐츠를 제작한다면 훨씬 생생하고 현실적인 자료가 될 수 있다.
셋째, 어르신 본인의 목소리가 포함된 콘텐츠 제작도 필요하다. 유튜브에선 고령 유튜버들이 자신의 스마트폰 사용기를 이야기하며 인기를 얻고 있다. 이처럼 어르신의 시선에서 제작된 콘텐츠는 동료 고령층에게 훨씬 더 높은 공감과 신뢰를 제공한다.
결국, 디지털 소외계층 콘텐츠는 공공성 + 현장성 + 공감성을 모두 갖춘 주체가 함께 만드는 공동 작업이어야 하며, 일방적인 ‘정보 제공자’의 시선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을 것이다.
디지털 소외계층에게 콘텐츠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콘텐츠가 아무리 잘 만들어져도, 전달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특히 디지털 소외계층에게 콘텐츠를 배포하는 채널은 일반적인 SNS, 웹사이트, 앱 중심과는 완전히 달라야 한다.
첫째, 오프라인 배포는 여전히 매우 중요하다. 마을회관, 보건소, 주민센터, 복지관에 인쇄된 교육자료나 QR코드 스티커, 매뉴얼이 비치되어야 하며, 버스 정류장, 은행, 병원 등 실사용 공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형태로 제공되어야 한다.
둘째, ‘디지털 콘텐츠의 아날로그 보조 수단’을 함께 제공해야 한다. 예를 들어 유튜브 영상 강좌가 있다면, 그 내용을 요약한 A4 한 장짜리 안내문도 같이 배포하여, 어르신이 ‘보고 또 보며 따라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TV나 라디오 등 기존 매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일부 지자체는 케이블 지역 채널을 통해 ‘디지털 생활백서’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으며, 이는 접근성이 낮은 고령층에게 매우 효과적인 전달 수단이다.
넷째, 디지털 튜터나 멘토가 수업 현장에서 콘텐츠를 보여주고, 따라 하게 만드는 방식이 가장 효과적이다. 예: 튜터가 유튜브로 카카오톡 강의를 보여준 후, 어르신이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그대로 따라해보는 형태.
즉, 단순히 ‘배포한다’는 개념에서 벗어나, ‘도달하고, 사용하고, 익히게 만드는 체계적인 전달 경로’가 설계돼야 한다.
콘텐츠 제작과 배포를 연결하는 정책적 구조는 어떻게 설계되어야 하는가?
디지털 소외계층을 위한 콘텐츠가 효과적으로 만들어지고, 전달되기 위해서는 콘텐츠 제작 → 콘텐츠 인증 → 콘텐츠 전달 → 피드백 수렴 → 보완 제작의 순환 구조가 필요하다.
- 콘텐츠 인증 시스템 도입 : 정부나 지자체가 디지털 소외계층용 콘텐츠를 대상으로 가독성, 난이도, 반복성, 시각설계 등을 기준으로 인증마크를 부여하는 제도. 이를 통해 어르신이나 튜터는 검증된 콘텐츠만 골라 사용할 수 있는 신뢰 기반 확보.
- 콘텐츠 허브 플랫폼 구축 : 복지부, 교육청, 지방정부가 공동으로 디지털 포용 콘텐츠 전용 플랫폼을 운영하고, 이를 통해 전국 어디서든 다운로드 및 주문 가능하도록 설계.
- 제작자 지원 및 수요 반영 예산 편성 : 튜터, 교사, 콘텐츠 제작자에게 공모 및 제작지원금 제공. 교육 현장의 요청을 반영한 콘텐츠 제작 예산을 기기 지원 예산과 별도로 배정.
- 지역 중심 콘텐츠 큐레이션 제도 도입 : 지자체 단위로 디지털 포용 코디네이터를 배치해, 해당 지역 주민 특성과 생활 정보를 반영한 콘텐츠를 선별·보급. 예: 농촌 지역엔 농약 앱 사용법, 어촌 지역엔 날씨 알림 서비스 활용법 등.
기술의 확산은 도달로 끝나지 않는다. 이해와 반복, 사용과 피드백, 공감과 기다림이 수반되어야 한다. 콘텐츠는 결국 도구이며, 사람을 향해 설계된 콘텐츠만이 포용을 완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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