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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소외계층

디지털 소외계층을 위한 기기 대여 사업, 기기는 남았지만 사람은 왜 떠났나

디지털 격차 해소를 위해 정부와 지자체는 지난 몇 년간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특히 디지털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한 스마트폰, 태블릿, 노트북 등의 기기 대여 사업은 정보 접근의 형평성을 확보하려는 취지에서 시작된 대표적인 정책 중 하나였다.

그러나 정책이 시행된 지 1~2년이 지난 지금, 현장의 목소리는 다르다. 기기는 창고에 쌓여가고, 어르신은 다시 주민센터 문턱을 넘지 않는다. 대여 장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활용률은 저조하고 반납률은 높아지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선 기기 자체가 유휴자산으로 전락하고 있다.

디지털 소외계층을 위한 기기 대여 사업

 

“배달해 드렸는데, 박스를 안 뜯으셨어요.” “어르신이 그냥 돌려달라고 하셨어요.” 이런 말들이 교육 현장과 주민센터 실무자 사이에서 반복되는 현실은, 단지 기기를 나눠주는 것으로는 디지털 포용이 이뤄질 수 없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 글에서는 디지털 소외계층을 위한 기기 대여 사업이 현장에서 어떤 한계에 직면하고 있는지, 그 원인을 사용자 중심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기기 지원을 넘어서 진짜 ‘사용’으로 연결되기 위한 정책적 보완 방향을 제안하겠다.

디지털 소외계층 기기 대여 사업의 현주소: 기대와 현실의 괴리

2021년부터 여러 지자체에서 시행된 디지털 소외계층 대상 기기 대여 사업은 출발 당시 높은 기대를 모았다. 고령층, 장애인, 저소득층 등 정보 취약계층에게 태블릿이나 스마트폰, 노트북을 일정 기간 무상으로 대여해주고, 기본적인 사용법까지 안내하는 방식이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행정서비스 접근이 필수가 되며, 이러한 정책은 포용적 복지의 일환으로 강조되었다.

하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기기를 나눠줬을 뿐, 그 다음은 없었다’는 반응이 많았다. 경북 A군에서는 1년간 총 350대의 태블릿을 고령층에게 대여했지만, 실제 사용률은 30% 미만에 그쳤고, 반납률은 6개월 만에 40%를 넘었다. 일부는 포장을 뜯지 않았고, 일부는 “잘 모르겠으니 그냥 가져가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디지털 소외계층은 기기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단순한 전자기기가 아닌, 낯선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기기 대여가 단발성으로 끝나고, 교육이나 기술 지원, 사후 모니터링이 부족한 상황에서 그 문은 결국 닫히고 만다.

기기를 주는 것만으로는 기술을 사용할 수 없다. 오히려 ‘나는 못하는 사람’이라는 자기 낙인을 강화하는 역효과도 발생할 수 있다. ‘기기 + 교육 + 멘토링’이 함께 작동하지 않으면, 정책은 예산 낭비로 전락한다.

디지털 소외계층의 ‘사용 거부’ 현상: 심리적, 실천적 장벽

디지털 소외계층이 기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한 ‘몰라서’가 아니다. 그 이면에는 복합적인 심리적, 실천적 장벽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두려움과 불안감이다. “버튼 잘못 눌렀다 망가지는 거 아냐?”, “이거 쓰다가 돈 빠져나가면 어떡하나?”와 같은 질문은 단지 농담이 아니다. 기술을 접하지 못한 세대에게는 조작 실패가 곧 불안한 결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공포가 내재되어 있다.

두 번째는 학습 기회의 부재다. 대여 시 간단한 설명은 있지만, 1회성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으며, 개별적 복습이나 반복 학습을 도와줄 시스템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매뉴얼은 글씨가 작고 복잡하며, 전화로 물어볼 수 있는 창구도 부실하다.

세 번째는 기술의 필요성을 체감하지 못하는 점이다. ‘왜 써야 하는지’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면, 기기는 ‘쓸모없는 물건’으로 인식된다. 디지털 소외계층은 “이걸 쓰면 나한테 뭐가 좋은가?”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듣지 못한 채, “그냥 지원받았으니 받는다”는 식의 수동적인 태도로 접근한다.

결국 기기를 줘도 ‘사용하지 않는’ 선택이 오히려 더 안정적이라고 느끼게 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디지털 소외계층 기기 대여 사업의 실패 원인: 시스템 설계의 오류

이러한 현실은 디지털 기기 대여 사업의 본질적인 한계를 드러낸다. 하드웨어 중심의 공급 정책은 사용자의 삶과 맥락을 고려하지 않으면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다음은 사업 실패의 대표적 설계 오류들이다.

 

'기기'를 목적으로 설정한 정책 설계 : 정책이 기술 보급률 향상이나 기기 수량 확보 자체에 집중되면서, 정작 사용자 경험(UX)은 후순위로 밀렸다.

사용자 분석 없이 일괄 공급 : 연령, 문해력, 시력, 손 떨림, 학습 속도 등 개인 특성에 맞춘 기기 설계나 설정이 부재했다. 예: 작은 태블릿 화면, 복잡한 UI

교육·피드백 체계의 부재 : 기기를 받은 후 이어지는 교육과 복습, 실습, 질의응답 체계가 없어, 단 한 번의 실패가 곧 포기로 이어졌다.

공감 없는 전달 방식 : “받으세요, 이거 요즘 필수예요” 같은 일방적 안내는 오히려 거부감만 키웠다. 소외계층에게는 기술보다 정서적 배려와 설명 방식이 더 중요했다.

이러한 시스템적 허점은 ‘정책은 했지만,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사업’이라는 냉정한 결론을 낳는다. 디지털 포용은 물리적 접근만으로 완성되지 않을 것이다.

기기보다 중요한 건 ‘함께 써보는 시간’: 실효성 있는 대안 제안

디지털 소외계층을 위한 기기 대여 정책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단순한 물리적 장비 제공을 넘어 실질적인 ‘기술 활용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다음은 그를 위한 4가지 대안이다.

1. 기기 + 튜터 패키지 방식 도입
기기를 대여할 때 청년 멘토 또는 디지털 동행 튜터 1인과 1:1 매칭하여 최소 4~6회 동행 교육을 병행하면, 실사용률이 높아진다.

2. 기기 설정 표준화 및 ‘어르신 모드’ 탑재
기기 내 기본 세팅을 어르신 친화적으로 구성해야 한다. 예: 홈화면 단순화, 필수 앱만 고정 배치, 큰 글씨 기본 적용, 음성 안내 설정 등.

3. ‘기술을 왜 써야 하는지’를 설득하는 커리큘럼
디지털 기기 사용을 통한 복지정보 확인, 가족과의 소통, 병원 예약, 금융 업무 편리화 등 구체적 사례를 중심으로 생활 밀착형 교육 설계가 필요하다.

4. 대여 이후 실사용 모니터링 및 사후 피드백 강화
기기만 대여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2~3개월마다 간단한 사용 실태 체크 및 문제 상담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통해 실사용 데이터도 확보 가능하다.

궁극적으로 디지털 소외계층에게 필요한 것은 기계가 아니라 함께 써보는 시간이다. 기기는 수단일 뿐이며, 사람과 관계 중심의 설계가 있을 때, 기술은 비로소 삶을 바꾸는 도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