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은 더 이상 선택의 영역이 아니다. 공공서비스, 금융거래, 의료예약, 교통정보 확인 등 삶의 거의 모든 것이 디지털 기술을 통해 이루어지는 시대에, 기술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은 곧 삶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는 것과 같다. 특히 지방 소도시에 거주하는 고령층, 저소득층, 저학력층은 여전히 ‘디지털 기술’의 수혜 대상이 아니라 소외된 존재로 남아 있다.
이러한 디지털 소외계층은 단순히 불편함을 겪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기술을 다루지 못한다는 이유로 정부 지원에서 탈락하거나, 자기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거나, 공공 정보를 접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고 있다. 결국 디지털 격차는 정보 격차를 넘어서 사회적 불평등과 권리 침해 문제로 확장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디지털 정책은 여전히 ‘전국 평균’에 맞춰 설계되고, 서울과 수도권 기준으로 실행된다. 지방 소도시와 농촌에서 겪는 현실은 다르다. 이 글에서는 지방 소도시를 중심으로 디지털 소외계층의 권리 보장을 위한 실질적 정책 방안을 네 가지 축으로 정리하여 제안한다. 포용 사회를 말하려면, 가장 바깥에 있는 사람의 목소리부터 들어야 할 것이다.
디지털 소외계층을 위한 ‘접근권’ 보장은 헌법적 가치의 문제다
디지털 권리는 단순히 기계를 사용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니다. 그것은 정보에 접근하고, 정책과 서비스에 참여하며,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헌법적 권리다. 하지만 현재 지방 소도시에서는 공공정보 대부분이 모바일 앱 기반으로 제공되고, 정부 민원 서비스 역시 디지털 인증을 기본 전제로 운영되고 있다.
경상북도 의성군에서는 65세 이상 주민 중 절반 이상이 ‘디지털 민원 앱’을 사용할 수 없다고 응답했다. 또한 일부 주민은 복지 혜택 안내를 ‘문자 알림으로만 받는다’는 이유로 신청 기회를 놓친 사례도 있었다. 이는 명백히 정보 접근권이 제한된 상태이며, 곧 사회참여 기회의 박탈로 연결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보 접근 약자를 위한 ‘비디지털 경로 병행 제공’ 의무화가 필요하다. 중앙정부는 모든 공공서비스 제공 시 디지털 외에 전화·우편·현장 안내 등의 방식을 병행해야 하며, 지방정부는 이에 따른 정보 보조 인력 배치를 의무화해야 한다.
디지털은 편의를 위한 기술이지만, 그 기술이 누군가의 권리를 빼앗고 있다면, 그것은 기술의 오용이자 공공성의 훼손이다. 접근의 기회는 기술 이전에 국가가 보장해야 할 기본권의 문제이다.
지방 소도시 디지털 소외계층을 위한 맞춤형 교육 정책이 필요하다
정부는 어르신 디지털 교육을 확대하고 있지만, 대부분이 도심 기반의 집합 교육 모델에 머무르고 있다. 문제는 지방 소도시나 읍면 단위에서는 교육 접근성 자체가 낮고, 주기적 반복 학습이 어렵다는 점이다. 강사가 일회성으로 방문하고, 교재는 표준화된 내용을 그대로 사용하는 식이라면, 그 효과는 현장에서 체감되기 어렵다.
지방 디지털 소외계층을 위한 교육은 ‘배우는 교육’이 아니라 ‘되풀이할 수 있는 구조’를 중심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첫째, 읍·면·리 단위 디지털 체험 공간(디지털 쉼터)을 확산해야 한다. 둘째, 청년 멘토와 지역 노인을 1:1로 연결하는 디지털 동행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셋째, 일상 속에서 실습할 수 있는 콘텐츠 중심의 커리큘럼을 제작해야 한다.
예를 들어, 키오스크 수업을 했다면 인근 실제 식당에서 할인을 제공하고 어르신이 직접 주문해보도록 유도하거나, 병원 예약 수업 후에는 진료 시뮬레이션까지 연계하는 등의 ‘생활 기반 학습’ 모델이 필요하다.
단순히 앱 사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삶 속에서 반복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해야 진짜 디지털 주체화 교육이 될 것이다.
디지털 소외계층 권리 보장을 위한 제도화 필요: 법적 기반과 예산 분배
현재 디지털 소외계층 보호를 위한 법률은 뚜렷이 존재하지 않는다. 디지털 전환 기본계획, 디지털 포용 정책, 정보격차 해소 사업 등은 모두 행정 지침 혹은 예산 항목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개별 권리를 보장하는 ‘디지털 권리법’은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제도화가 필요하다.
첫째, ‘디지털 정보권 보장법’ 또는 ‘디지털 약자권리법’과 같은 별도의 법률을 제정하여, 고령자·장애인·저소득층과 같이 디지털 활용이 어려운 계층이 정보에 접근할 권리, 디지털 기초교육을 받을 권리, 그리고 오프라인 방식(예: 창구·전화·서면 등)을 선택할 권리를 헌법상 기본권 수준으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 이로써 기술을 이유로 누구도 행정서비스나 공공정보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법적인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
둘째,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편성 시 ‘디지털 소외계층 지원 항목’을 별도로 구분하고, 전체 예산 중 일정 비율 이상을 디지털 격차 해소를 위한 사업에 의무적으로 배정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디지털 포용 정책이 일회성 지원이나 공모사업에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하고 안정적인 재정 구조 안에서 운영될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공공기관이 개발하거나 도입하는 디지털 기술·서비스에 대해서는 사전에 ‘접근성 평가’를 의무화하여, 고령자나 장애인 등 디지털 접근 취약계층이 직접 이용할 수 있는지 여부를 반드시 검토하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키오스크나 공공앱을 설계할 때에는 글자 크기, 화면 구성, 조작 방식 등에 대한 사용자 경험(UX)과 사용자 인터페이스(UI)를 사전에 평가받고, 개선 권고를 받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법적 기반 없이 정책만 존재하면, 정치 상황이나 예산 삭감에 따라 언제든지 중단될 수 있다. 반면 제도화된 권리는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구조적 안전장치가 된다. 디지털 소외계층의 권리 보장을 위해 정책은 행정이 아니라 입법으로 완결되어야 한다.
지역 사회 기반 디지털 돌봄 모델 도입: 사람과 기술의 균형
기술만으로는 디지털 소외를 해소할 수 없다. 디지털 소외계층이 기술을 배워도, 일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돌봄과 관계망이 없다면 결국 다시 기술을 포기하게 된다. 지방 소도시일수록 그 현상은 더 극명하다. 때문에 이제는 ‘디지털 복지’를 기술 제공 중심에서 ‘관계 기반 서비스’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우선 지자체는 ‘디지털 생활지원사’ 제도를 제도화해야 한다. 이는 기존 복지사·마을활동가와는 별개로, 고령자의 스마트 기기 활용, 정보 수신, 서비스 신청을 지원하는 역할이다. 이 인력을 청년·경력단절자와 연계해 지역 일자리로 확장할 수 있다.
또한, 마을회관이나 경로당 단위로 ‘디지털 친구 모임’을 조직하고, 정기적인 스마트폰 사용 공유 모임을 운영해야 한다. 이와 병행해, 지역 병원·은행·관공서에 ‘디지털 약자 대응 창구’를 의무 설치하여,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을 즉시 도울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기술은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디지털 포용은 결국 기술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단절을 해소하는 데 있다. 지방 소도시의 디지털 소외계층은 이러한 관계 중심의 정책이 절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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