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술은 이제 생활의 필수 요소가 되었다. 정부 민원 서비스, 병원 예약, 대중교통 이용, 금융거래, 소셜 커뮤니케이션까지 대부분의 일상이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런 기술 기반 환경 속에서도 여전히 디지털 소외계층, 특히 고령층과 농촌 지역 주민들은 기술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 현실적으로 생활에 참여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정부는 디지털 격차 해소를 위해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그 교육을 실제로 ‘배운다’고 느끼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현장에서는 교육을 수강한 어르신 중 다수가 “기억이 안 나서 다시 할 수 없다”거나 “한 번 듣고는 절대 못 따라 하겠다”며 결국 배우기를 포기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보고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디지털 소외계층이 기술을 배우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배움 포기’ 현상의 원인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제시되는 반복 학습 시스템의 실제 효과와 가능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디지털 소외계층의 배움 포기 현상, 단순한 이해 부족이 아니다
디지털 소외계층이 교육을 중도에 포기하거나 이후 실생활에서 기술을 전혀 활용하지 못하는 사례는 전국적으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 교육에 참여한 70대 이상 어르신 중 상당수가 수업 직후에는 “이해했다”고 말하지만, 며칠 후 실습을 요청하면 대부분 “기억이 안 난다”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이러한 ‘배움 포기’ 현상은 단순히 설명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반복할 수 없는 환경과 교육 구조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대부분의 교육은 1~2회 강의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고, 강사가 현장을 떠난 뒤에는 복습하거나 질문할 수 있는 창구가 부재하다. 즉, 배웠지만 몸에 익지 않았고, 다시 물어볼 사람도 없으며, 실수를 두려워하는 심리가 겹쳐져 ‘나는 원래 안 된다’는 자기 낙인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더불어 어르신들의 학습 방식은 젊은 세대와 달리 천천히, 반복적으로, 맥락 중심으로 접근해야 효과적이다. 하지만 현재의 디지털 교육은 기능 중심, 시간 중심, 수료 중심으로 운영되며, 개인의 학습 속도와 불안감을 고려하지 못하는 구조다. 그 결과 교육을 받았음에도 실제로는 배움이 일어나지 않았고, 스스로 기술에서 멀어지게 될 것이다.
반복 학습 시스템의 핵심은 ‘천천히, 여러 번, 망각을 전제로’
배움 포기를 막기 위해 가장 많이 언급되는 대안이 바로 **‘반복 학습 시스템’**이다. 이는 단순히 동일한 교육을 여러 번 한다는 뜻이 아니다. 반복 학습 시스템이란 배운 내용을 쉽게 잊는 고령자나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소외계층을 위해, 복습이 구조적으로 설계된 교육 방식을 의미한다.
첫째, 반복 학습은 일회성 강의가 아닌 정기적 실습 구조를 전제로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주 1회 수업이 아니라, 매일 10~20분씩 짧고 자주 연습할 수 있는 공간과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둘째, 교육 콘텐츠는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구성되며, 문자 중심보다는 그림과 단계적 행동 중심의 커리큘럼이 효과적이다. “앱을 켜세요”가 아니라 “이 초록색 버튼을 눌러요 → 화면이 바뀌면 파란 글씨를 눌러요”처럼 구체적이고 시각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셋째, 실수에 대한 불안감을 줄여주는 분위기 조성이 중요하다. 반복 학습은 실패를 전제로 설계되어야 하며, “이건 다들 처음엔 헷갈려요”라는 식의 공감과 격려가 동반될 때 비로소 학습 지속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반복 학습 시스템은 단순한 교재나 수업을 넘어서, 지역 내에서 상시 접근 가능한 ‘디지털 쉼터’, ‘기억 복습방’ 같은 공간과 연결돼야 한다. ‘배웠지만 기억이 안 나는 어르신’이 다시 가서 부담 없이 물어볼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할 것이다.
실제 반복 학습 기반 교육이 만들어낸 변화 사례
경상북도 청송군에서는 2023년부터 어르신 반복 학습 디지털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의 핵심은 ‘기억은 잊히고, 배움은 반복돼야 한다’는 철학이다. 교육은 주 3회 진행되며, 각 수업은 동일한 내용이지만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된다. 예를 들어 첫 주는 문자 보내기, 둘째 주는 이모티콘 붙여보기, 셋째 주는 음성 메시지 보내기처럼 기능은 같되 접근 방식만 바꾸는 반복 구조를 적용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75세 김모 어르신은 “처음엔 수업 3번 들어도 모르겠더니, 일주일마다 똑같은 걸 여러 번 하니까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며 웃었다. 또 다른 어르신은 “수업 끝나고 카페에서 키오스크로 주문해봤는데, 해냈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반복 학습 시스템은 배움 포기의 심리적 장벽을 줄이고, 성취감으로 이어지는 실질적 효과를 만들어냈다. 해당 교육에 참여한 어르신 40명 중 34명이 ‘실생활에서 디지털 기능을 사용해봤다’고 답했으며, 이는 기존 일회성 교육 대비 3배 이상 높은 수치였다.
청송군 사례는 반복 학습이 단순한 ‘복습’을 넘어서 자신감을 회복시키는 정서적 돌봄의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앞으로의 디지털 포용 정책이 기능 위주에서 벗어나야 할 필요성을 나타낸다.
디지털 소외계층을 위한 반복 학습 시스템의 정책적 과제와 방향
디지털 소외계층이 기술 앞에서 포기하지 않도록 돕기 위해, 반복 학습 시스템은 공공 교육 체계 내에서 반드시 제도화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
첫째, 지자체는 읍·면 단위마다 ‘디지털 반복 학습 공간’을 의무적으로 확보하고, 강의실 중심이 아닌 실습 기반 소규모 공간을 배치해야 한다. 두 번째로, 교육 강사는 기능 전달형이 아니라 정서 지원형 멘토로 역할이 재설정돼야 하며, 반복에 익숙하고, 느린 학습자에게 인내심 있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교육 자료는 영상과 음성 중심의 반복형 콘텐츠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유튜브나 TV 화면을 통해 ‘보고 따라 할 수 있는’ 콘텐츠가 지역 채널을 통해 송출된다면, 어르신은 혼자서도 복습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배움 포기자’를 다시 교육 대상자로 포용하는 회복 시스템이 필요하다. 한 번 수업을 그만둔 사람은 대체로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일정 주기로 재참여를 유도하고, 교육 이력을 관리하며, “처음이 아니라, 다시 시작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재방문 시스템이 필요하다.
결국 디지털 교육은 한 번 가르쳐서 끝내는 구조가 아니라, 반복을 통해 사람을 지지하는 사회적 장치가 되어야 한다. 기술보다 중요한 건, 기술을 배우는 사람의 속도와 감정을 존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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