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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소외계층

디지털 소외계층을 위한 공공기관 중심 IT 교육, 왜 수요자와 멀어지는가

디지털 역량 강화를 위한 국가 차원의 교육 정책은 매년 확대되고 있다. 행정안전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지자체 및 산하기관들은 전국적으로 ‘디지털 포용 교육’, ‘어르신 IT 활용 교육’, ‘찾아가는 디지털 체험관’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디지털 소외계층의 격차 해소를 목표로 하고 있다.

 

디지털 소외계층을 위한 공공기관 중심 IT 교육

 

 

 

그러나 정책의 ‘의도’와는 달리 실제 교육 현장에서는 수요자 중심성과 현장 적합성 부족으로 인해 괴리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고령층이나 저소득층, 농어촌 거주자 등 디지털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한 교육일수록, 그들이 정작 원하는 기능과 수준, 학습 방식과 동기가 교육 프로그램의 설계와 동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이 글에서는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IT 교육이 왜 수요자인 디지털 소외계층의 현실과 맞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정책 설계·운영의 구조적 문제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심층적으로 분석해보겠다.

 

디지털 소외계층 교육 설계의 출발점이 현장을 반영하지 않는다

디지털 소외계층을 위한 교육을 설계할 때, 많은 공공기관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집중하지만,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가르칠 것인가’는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교육 기획 단계에서 수요자 조사가 형식적으로 이루어진다는 데 있다. 단순 설문조사나 간접 통계자료에 의존하여 콘텐츠를 구성하면, 현장에서 실제 필요한 기능과는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한 지자체에서는 키오스크 체험을 중심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구성했지만, 정작 어르신 수강생들의 요구는 ‘문자 메시지 확인하는 방법’, ‘자녀에게 사진 보내기’였다. 또 다른 농촌 지역에서는 공공앱 설치법을 배운 후에도 어르신들이 “이게 우리한테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며 혼란을 표현했다.

디지털 소외계층에게 필요한 것은 고도화된 기능보다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최소한의 디지털 역량이다. 하지만 교육 커리큘럼은 종종 최신 기술, 정책 트렌드, 행정 효율 중심으로 짜여진다. 이 같은 설계 구조는 디지털 소외계층에게 교육 자체에 대한 거부감을 유발하고, 결국 참여율과 만족도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공공기관 중심 교육이 가진 획일성과 속도 중심의 한계

공공기관 주도 교육은 통상적으로 표준화된 교재와 일정, 집체 교육 방식을 따른다. 물론 이는 예산 관리와 행정 절차에 유리한 방식이지만, 디지털 소외계층이 처한 다양한 상황과 학습 속도, 이해도 차이를 반영하기에는 지나치게 경직된 구조다.

예를 들어, 10명 이상이 한 교실에 모여서 일괄적으로 진행되는 수업은 학습 속도가 느리거나 질문이 많은 수강자에게 매우 비효율적일 수 있다. 특히 고령층은 손의 감각, 시력, 이해력에 따라 개인별 편차가 매우 크기 때문에, 개별 맞춤형 대응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의 시스템은 그런 유연성을 거의 제공하지 않는다.

또한, 강사 역시 파견 위주로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관계 형성과 반복 교육이 어렵다. 수강생이 다시 질문하고 싶어도 같은 강사를 만날 수 없고, 지역 내 후속 지원 체계도 대부분 부실하다. 그 결과 교육은 ‘받을 때만 잠깐’ 의미 있고, 이후에는 기억도 흐려지고 활용도 되지 않는 일회성 체험 행사로 전락한다.

이처럼 공공기관 중심 IT 교육은 획일성과 시간 중심 배분 구조로 인해 디지털 소외계층의 실질적 역량 향상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다.

 

디지털 소외계층이 체감하지 못하는 교육 효과의 악순환

공공기관의 IT 교육에 참여한 디지털 소외계층 수강생들은 수업을 듣는 도중에도 ‘이게 나랑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교육 내용이 생활과 연결되지 않고, 배운 기능을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활용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험은 결국 교육 자체에 대한 회의감을 만든다.

특히, 디지털 교육을 여러 번 들었음에도 여전히 기초 기능조차 익히지 못했다고 느끼는 어르신들은 “나는 못 배운다”, “나는 원래 안 되는 사람이다”라는 자기 낙인과 좌절감에 빠진다. 이는 단순한 교육 효과 저하를 넘어서 학습 거부감과 디지털 혐오 감정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예산과 시간은 투입됐지만, 결과적으로 교육이 수요자의 일상 속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면, 그 정책은 실패라고 봐야 한다. 현재 수많은 공공기관 교육은 ‘수료 인원’, ‘만족도 응답률’, ‘과정 개설 횟수’라는 행정지표로만 평가된다. 그러나 이런 수치는 디지털 소외계층이 실제로 무엇을 얻었는지를 보여주지 못한다.

 

디지털 소외계층을 위한 진짜 교육은 ‘관계 중심+생활 연계’여야 한다

디지털 소외계층에게 필요한 것은 ‘교육을 받았다’는 기록이 아니라, 기술을 통해 내 일상을 바꿀 수 있다는 실감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생활 밀착형 콘텐츠 구성과 지역 중심 관계 기반 교육 체계가 필요하다.

첫째, 수요자 조사를 사전 설문이 아닌 생활 현장 동행 인터뷰, 구술 중심 조사 방식으로 진행해 교육 콘텐츠를 구성해야 한다. 둘째, 교육은 단기적 집체 방식이 아니라 소규모 반복 교육 모델로 전환돼야 한다. 셋째, 강사는 외부 파견 인력이 아니라 지역 내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디지털 코디네이터, 멘토, 청년 봉사단 등으로 구성돼야 한다.

또한, 공공기관이 교육 전후에 ‘생활 속 반복 학습 지원 시스템’을 병행해야 한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 관련 질문을 할 수 있는 마을 단위 디지털 상담 창구, 어르신 대상 1:1 앱 복습 교육 등이 함께 운영돼야 기억, 실습, 적용의 선순환 구조가 생긴다.

공공기관 중심 IT 교육이 디지털 소외계층의 삶을 바꾸기 위해서는 단순한 전달에서 벗어나 교육의 구조, 관계, 맥락을 설계하는 정책 전환이 절실하다. 더 많이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이해하고, 함께 배우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짜 포용 교육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