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화 시대의 상징처럼 등장한 키오스크는 어느새 생활 깊숙이 파고들었다. 패스트푸드 매장, 병원, 카페, 영화관, 심지어 공공 민원 창구까지… 사람들이 키오스크 앞에 서서 원하는 기능을 누르고, 기다리지 않고, 사람과 말하지 않아도 업무를 마치는 것이 이제는 ‘당연한 절차’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모두에게 당연한 것은 아니다. 디지털 소외계층, 그중에서도 고령층 어르신들에게 키오스크는 ‘기술’이 아니라 ‘장벽’이다. 글자가 너무 작거나, 어떤 버튼을 눌러야 할지 몰라 두려워하거나, 한 번 실수하면 원점으로 돌아가는 화면 흐름은 오히려 공포로 다가온다. 키오스크 앞에서 불안과 혼란을 느낀 경험은, 반복될수록 어르신의 자존감과 사회 참여 욕구까지 떨어뜨린다.
이러한 문제를 인식한 일부 지방 소도시는 어르신들을 위해 ‘키오스크 체험 부스’를 지역 커뮤니티 내에 설치하고, 반복 학습과 친숙한 환경에서 키오스크 사용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도록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디지털 소외계층을 위한 어르신 전용 키오스크 체험 부스를 실제로 운영한 지방 사례를 바탕으로, 그 기획 배경, 운영 방식, 반응, 효과, 그리고 앞으로의 확장 가능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디지털 소외계층을 위한 체험 부스가 필요했던 이유
키오스크 관련 민원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특히 어르신 대상 서비스업소(분식점, 커피숍, 병원 등)에서 키오스크를 도입하면서, 고령층의 접근권이 사실상 제한되고 있다는 비판이 많아지고 있다. 대부분의 어르신은 조작을 두려워하거나, 스스로 실수했다고 느끼며 위축되기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않고 매장을 떠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경상남도 밀양시의 한 읍면지역에서는 키오스크 사용 중단 민원이 하루 3~4건씩 접수되기도 했다. 대부분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기계가 복잡하다”, “그냥 주문하고 싶은데 화면이 너무 빠르게 바뀐다”는 반응이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지방 소도시 몇몇 지자체는 ‘무조건 배워라’가 아닌, ‘먼저 익숙해지자’는 접근 방식을 택했다. 그리고 실제 매장과 똑같은 환경에서 부담 없이 연습할 수 있도록, 마을 회관, 복지관, 주민센터 등에 어르신 전용 키오스크 체험 부스를 설치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된 것이다.
이 체험 부스는 단순한 기계 체험이 아니라, 디지털 소외계층이 ‘실패해도 괜찮은 공간’에서 반복적으로 기계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하는 안전한 배움의 공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디지털 소외계층 대상 체험 부스의 실제 운영 사례: 경북 문경시
2024년 7월부터 경북 문경시는 농암면과 문경읍 2곳에 ‘어르신 전용 키오스크 체험 부스’를 시범 운영했다. 이 부스는 실제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사용하는 키오스크와 동일한 기기를 활용하되, 화면 속 콘텐츠는 어르신이 이해하기 쉽게 커스터마이징 되어 있었다. 메뉴는 크게, 글자는 큼직하게, 화면 전환은 천천히 진행되도록 설계됐다.
특히 이 부스에는 전담 디지털 멘토링 인력이 항상 상주해 있어, 어르신이 버튼을 잘못 눌렀을 때 옆에서 바로 도와줄 수 있었다. 또한 ‘실수도 학습이다’라는 원칙 하에, 반복 체험이 가능하도록 자유롭게 이용 시간을 설정했다. 문경시는 이 사업을 위해 디지털 교육을 받은 청년 일자리 지원단을 연계해 멘토 인력을 충원했고, 이 과정에서 세대 간의 기술 격차 해소와 정서적 교감까지 이루어지는 부수 효과도 얻었다.
체험 부스를 운영한 두 달 동안 65세 이상 어르신 총 310명이 참여했으며, 평균 만족도는 96% 이상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제 진짜 매장에서 한번 해볼 용기가 생겼다”, “기계가 어려운 게 아니라 내 속도가 느린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천천히 해주니까 된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디지털 소외계층 체험 중심 교육이 가져온 실제 변화
문경시의 체험 부스를 경험한 어르신 다수는 기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서 벗어났다고 답했다. 이는 단순히 키오스크 조작법을 익혔다는 의미를 넘어서, 자신이 기술 환경에서도 충분히 학습 가능한 존재라는 자기 인식의 변화를 의미한다.
디지털 소외계층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기능이 아니라, 심리적 안정감과 반복 학습 환경이다. 실제로 체험 부스를 꾸준히 이용한 어르신 중 일부는 지역 내 패스트푸드 매장이나 병원 키오스크를 스스로 시도했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용기도 함께 생겼다고 응답했다.
또한 멘토로 참여한 청년들은 “이전에는 키오스크를 못 쓰는 어르신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화면 구성 자체가 너무 빠르고 복잡하다는 걸 알게 됐다”며, 기술에 대한 감수성과 사회적 공감 능력도 함께 향상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체험 기반 교육은 ‘배우는 사람만 성장하는 구조’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기술을 이해하고 조율하는 포용적 기술문화를 형성하는 시작점이 된다.
디지털 소외계층 체험 부스 모델의 확장성과 과제
문경시의 사례는 어르신을 위한 체험 중심 디지털 교육이 단순히 ‘기술 전달’이 아니라 ‘포용 환경 설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모델을 전국으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과제가 남아 있다.
첫째, 예산과 공간 확보 문제다. 기기 설치 및 유지보수, 전담 인력 운영, 교육 콘텐츠 개발에는 일정한 비용이 들어가며, 이를 지속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지자체 간의 협력 체계가 필요하다.
둘째, 정기적 피드백과 데이터 기반 개선 시스템이 필요하다. 단순히 만족도 조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활용도, 실생활 적용률, 학습 지속률 등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반영해야 한다.
셋째, 지역 맞춤형 키오스크 콘텐츠 설계가 중요하다. 농촌 어르신과 도시 고령자, 문해력이 낮은 어르신, 장애를 가진 노인 등 대상자의 특성에 따라 화면 구성과 기능을 조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델은 단기적 교육으로 한계에 부딪힌 기존 디지털 교육 정책에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대안을 제시한다. 체험 부스는 결국 디지털 소외계층이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고, 기술 앞에 다시 설 수 있게 만드는 ‘포용 기술의 마중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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