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지방의 정보 격차는 단순히 생활 인프라의 차이를 넘어, 디지털 문해력 수준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고령화 속도가 빠른 농어촌 지역에서는 스마트폰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어르신이 다수 존재하며, 이들은 점점 더 사회로부터 소외되는 경험을 한다. 반면, 같은 마을 안에서도 자라나는 손주 세대는 스마트기기를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환경에 익숙하다. 이처럼 세대 간 기술 이해도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지만, 최근 지방의 몇몇 초등학교에서 새로운 실험이 시작되었다. 폐교 위기에 처한 초등학교를 ‘디지털 교실’로 리모델링해, 어르신과 손주가 함께 배우는 디지털 문해력 향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IT 강의나 기계 조작법 교육에 그치지 않고, 세대 간 소통을 기반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손주와 조부모가 함께 스마트폰을 다루고, 인터넷을 검색하며, 키오스크를 시뮬레이션하는 수업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가족 공동체의 회복, 지역 사회의 재활성화, 디지털 포용의 확산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려는 시도로 평가된다. 이번 글에서는 이 디지털 교실 프로젝트의 운영 방식과 실제 효과, 그리고 향후 사회적 확장 가능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디지털 소외계층이 된 어르신들, 그들의 학교가 다시 열리다
지방의 많은 어르신들은 디지털 소외로 인해 일상생활에서 심각한 제약을 겪고 있다. 병원 예약부터 관공서 민원 처리, 금융 업무, 심지어 버스 시간 확인까지도 모두 스마트폰을 통해 이뤄지다 보니,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들은 이 모든 것이 벽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단순히 ‘몰라서 못 한다’는 이유로 이들을 사회 밖으로 내모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이러한 현실에서 ‘초등학교를 디지털 교실로 전환하는 프로젝트’는 매우 상징적이다. 과거 학창 시절을 보낸 학교에서, 다시 배우는 경험은 어르신들에게 친숙함과 안정감을 제공하며, 학습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을 줄여준다.
실제로 교육 참여자들은 "다시 학교에 다니게 될 줄은 몰랐다", "학생이 된 기분이라 더 열심히 하게 된다"는 반응을 보이며 높은 만족도를 나타낸다. 이처럼 학습 환경의 정서적 친밀감은 교육의 집중도와 지속성을 높이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과거의 기억이 서린 공간에서 ‘새로운 배움’을 시작하는 것은 단순한 공간의 활용을 넘어, 학습자의 심리적 안정감과 자신감을 북돋아주는 중요한 요소다.
또한, 폐교 위기의 학교를 지역 커뮤니티 허브로 전환함으로써 지역 사회 전체가 활기를 되찾는 효과도 있다. 방치된 공간이 재활용되고, 세대가 함께 어우러지는 배움터로 다시 기능하는 모습은 디지털 소외계층 문제 해결에 있어 ‘공간 활용’이 갖는 상징적·실질적 가치를 잘 나타낸다.
손주와 함께 배우는 수업, 기술과 관계를 동시에 익히다
이 프로그램의 가장 독창적인 구성은 ‘손주와 함께 배우는 수업’이라는 점이다. 단순히 강사가 일방적으로 알려주는 형식이 아니라, 조부모와 손주가 짝을 이루어 수업에 참여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 앱을 설치하고 사용하는 법을 배우는 수업에서는 손주가 조부모의 기기를 직접 다뤄가며 설명해주고, 조부모는 이를 따라하며 메모하거나 다시 질문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수업 방식은 여러 면에서 효과를 보이고 있다. 첫째, 익숙한 가족 구성원이 교사 역할을 하게 되면서 어르신들이 느끼는 심리적 부담이 현저히 줄어든다. 둘째, 세대 간 대화와 상호작용이 자연스럽게 늘어나면서 가족 간 정서적 유대가 깊어진다. 마지막으로, 손주 세대는 기술을 단순히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누는 기술’로 확장시킬 수 있는 경험을 얻게 된다. 기술을 가르치는 경험은 그 자체로 교육적이며, 책임감을 키워주는 역할도 한다.
이 수업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스마트폰 화면을 확대하는 법을 배운 뒤 조부모가 손주에게 “이제 너한테 문자 보낼 수 있겠네”라고 말하는 순간이다. 단지 버튼을 누를 수 있게 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대가 다시 연결되는 이 장면은, 디지털 교육이 단지 기술 전파의 의미를 넘어 사람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나타낸다.
실제 변화, 어르신들이 디지털 세계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다
이 디지털 교실을 통해 가장 큰 변화를 보이는 것은 참여 어르신들의 ‘자신감’이다. 대부분의 참여자들은 교육 전까지는 키오스크나 앱 사용에 대해 전혀 자신이 없었고, 주변에 젊은 사람이 없으면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8주 이상 수업에 꾸준히 참여한 뒤에는 스스로 사진을 찍어 저장하고, 동영상을 검색해 시청하며, 은행 업무를 어플로 처리하는 정도까지 활용 범위가 넓어졌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기기 사용법을 습득한 것이 아니다. 디지털 기술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오히려 흥미와 탐색 의지가 생긴 것이다. 어떤 참여자는 스마트폰으로 직접 음성 검색을 활용해 요리 레시피를 찾아보고, 다른 참여자는 기차 시간표를 스스로 검색해 예매까지 해냈다. 이처럼 실생활에서 직접 기술을 활용하는 장면이 늘어나면서, ‘사용자’가 아닌 ‘참여자’로의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또한, 동네 소모임이나 마을 행사에도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홍보 방식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어르신 중 몇몇은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마을 행사 포스터를 직접 만들고, 문자 메시지를 이용해 이웃에게 행사 정보를 전달하기도 했다. 이는 지역 사회에서 어르신들의 역할이 단순 수혜자가 아니라 능동적인 참여자로 확장되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교육은 어르신 개인에게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마을 전체의 분위기와 소통 방식을 변화한다.
디지털 포용의 새로운 모델, 전국으로 확산될 수 있을까
이처럼 지방 초등학교를 활용한 디지털 교실은 소외계층 문제 해결과 세대 통합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이 모델이 더 큰 사회적 흐름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안정적인 교육 예산의 확보다. 현재 대부분의 디지털 교실은 지자체나 민간 기관의 협력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장기적인 지속성을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
둘째는 체계적인 교육 커리큘럼과 강사 양성 체계 구축이다. 단순히 기계 작동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어르신들이 흥미를 느끼고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콘텐츠 구성과 전문 교육 인력이 필수적이다. 특히 세대 간 소통 기반 교육은 정서적 공감 능력과 세심한 배려를 요구하므로, 강사의 역량이 교육의 성패를 좌우한다.
셋째는 공간의 지속적인 개방과 활용이다. 폐교나 유휴 공간을 활용해 만든 디지털 교실은 단발성이 아니라, 지역 주민의 학습 커뮤니티로 정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 내 기관, 주민, 자원봉사자들이 협력하여 공동 운영하는 모델이 효과적이다.
지방의 초등학교에서 시작된 이 조용한 실험은, 디지털 소외계층이 기술에 다가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어주고 있다. 더 나아가, 이 모델이 전국 곳곳의 마을로 확산된다면, 단순히 기술 격차 해소를 넘어 한국 사회 전체의 디지털 포용 역량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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