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인터넷도 잘 안 터지고, 문자도 그냥 지워버렸어요.”
전라남도 완도군의 한 작은 어촌마을에서 만난 김○○ 어르신의 말이다. 바닷가에서 평생을 살아온 그는 아직도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전화 걸고 받는 것 정도에 불과하다. 마을회관 벽에 걸린 방송용 스피커가 끊기면, 주민 누구도 보건소 일정이나 마을 공지를 실시간으로 알 수 없었다. 스마트폰 속에 세상이 들어 있다는 말은 여전히 이 마을에서는 남의 일처럼 느껴졌다.
어촌지역은 물리적 접근성과 정보 전달 체계의 한계로 인해 도심보다 더 심각한 디지털 소외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은 늘 한정되어 있다. 특히 고령 인구 비율이 높은 어촌 지역에서는 대부분의 어르신이 문자 메시지를 열어보지 못하거나 공공 앱의 존재조차 모르고 살아간다. 이러한 상황에서 행정정보, 복지서비스, 의료예약 등 필수적인 공공 기능조차 전달되지 못하면서 정보의 사각지대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한 명의 디지털 튜터가 바닷길을 건너 이 마을을 찾았다. 정부의 디지털 배움터 사업을 통해 파견된 이 튜터는 단순한 스마트폰 교육자가 아니었다. 그는 마을의 눈이 되고 손이 되었으며, 무엇보다도 어르신들에게 기술을 넘어 삶의 변화를 전달한 존재였다. 본 글은 디지털 소외계층인 어촌 어르신을 위한 튜터링 현장을 따라가며, 기술 교육이 어떤 방식으로 일상에 스며들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기록한 생생한 사례 보고서다.
디지털 소외계층이 집중된 어촌 지역의 특수한 현실
우리 사회에서 디지털 소외는 단지 나이 때문만이 아니라 지역적 조건에 따라 더 심각해진다. 어촌 마을은 통신망이 불안정하거나, 도심 대비 공공 서비스 접근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 디지털 접근 기회가 구조적으로 제한돼 있다. 특히 만 70세 이상의 고령층이 대부분인 마을에서는 스마트폰이 있어도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행정안내 문자나 질병관리청의 백신 접종 정보 같은 필수 공공 메시지가 도착해도, 그것을 열어보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정보 격차는 곧 건강과 복지의 격차로 이어진다. 한 예로 마을 회관에 공지된 병원 이동진료 일정이 문자로 사전 전달됐지만, 어르신 대부분이 메시지를 읽지 못해 진료를 놓친 사례가 있었다. 일부는 금융사기 문자나 피싱 링크를 무심코 클릭해 피해를 입기도 했다. 또 다른 문제는 행정기관의 온라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종이문서 없이 온라인으로만 복지 신청이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하지만 주민 대부분은 본인 명의 공동인증서가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단지 불편함을 넘어, 정보가 닿지 않는 사람들의 사회적 고립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마을 간 정보 격차, 세대 간 기술 격차, 사람 간 소통 단절은 결국 고령층의 자존감 하락과 지역 공동체의 분열로 이어지고 있다. 디지털 튜터가 이 마을에 파견되기 전까지, 이 작은 어촌마을의 디지털 삶은 그렇게 멈춰있다.
디지털 튜터와 함께 시작된 변화, 기술보다 가까운 신뢰의 힘
2023년 가을, 광역시에서 파견된 디지털 튜터 박지현 씨가 이 어촌마을을 처음 방문했을 때, 어르신들은 교육이라는 말을 들은 순간부터 고개를 저었다. “이 나이에 무슨 공부냐”는 반응이 대다수였고, 누군가는 “그런 건 서울 사람들만 하는 거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튜터는 교육이라는 단어 대신 함께 눌러보자는 말을 꺼냈다. 처음에는 라디오 켜듯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실행하는 법을 알려줬고, 사진을 찍은 후 확대해서 손자의 얼굴을 확인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그렇게 첫 번째 교육은 ‘사진 보기’와 ‘전화번호 저장하기’였다. 튜터는 복잡한 설명을 피하고, 감정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기능부터 차근차근 소개했다. 둘째 주부터는 카카오톡으로 사진을 보내는 방법을 알려줬고, 이후 마을 단체방이 만들어지면서 어르신들은 마침내 문자 외에도 온라인 소통을 경험하게 되었다. 튜터는 주 2회 마을을 방문했고, 회관 한 켠에 자리를 잡아 틈나는 대로 어르신들의 질문에 답했다. 몇 번이고 같은 설명을 해도 짜증내지 않고, 큰 글씨가 보이도록 폰 설정을 바꿔주고, 음성입력 기능도 함께 설정해주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나타났다. 처음에는 스마트폰을 두려워하던 어르신이 손주에게 이모티콘을 보내고, 택배 배송 조회를 해보며 “나도 이걸 할 수 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튜터가 함께 있던 시간은 단순한 교육 시간이 아니었다. 그 시간은 기술을 통해 자신감을 회복하고, 다시 사회에 연결될 수 있다는 희망을 체험하는 시간이다.
디지털 튜터 이후 어르신의 변화된 일상과 공동체의 반응
디지털 튜터가 3개월간의 파견 일정을 마친 후, 마을에는 눈에 띄는 변화가 남았다. 첫째로, 마을 회관 벽에는 ‘단체 카톡방 이용 안내’가 붙었고, 마을 공지는 더 이상 방송에만 의존하지 않게 되었다. 둘째로, 보건소에서 보내는 예방접종 안내 문자, 복지관 행사 일정, 무료 진료일 정보 등이 실제로 전달되기 시작했다. 어르신들은 이제 문자 메시지를 읽고, 이해하며, 캘린더에 직접 표시까지 했다.
어떤 어르신은 자녀가 보내준 링크를 클릭해 유튜브로 손주의 학교 발표 영상을 시청했고, 또 다른 어르신은 병원 예약 앱을 통해 진료 일정을 관리하게 되었다. 기술은 그들의 삶을 더 효율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더 풍요롭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기능을 익히는 것이었지만, 점차 그것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것은 마을 전체의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점이다. 튜터의 영향으로 어르신들 사이에 기술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었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형성되었다. 몇몇 어르신은 서로 알려주며 작은 튜터 역할을 자처했고, 그 중 한 명은 복지관과 연결해 다른 마을의 스마트폰 교육을 신청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이렇게 디지털 튜터 한 명의 방문은 단순한 기기 사용법을 넘어, 마을 사람들의 자존감과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다.
튜터링이 끝난 후에도 지속 가능한 변화를 만들기 위한 과제
분명한 것은, 디지털 튜터의 방문은 마을에 큰 변화를 남겼지만 단기적 개입만으로는 완전한 디지털 포용을 이루기 어렵다는 점이다. 어르신들이 기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복적인 학습과 꾸준한 피드백이 필요하다. 일회성 교육은 오래가지 못하고, 곧 원점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지속적인 디지털 돌봄 체계다. 예를 들어, 마을 단위로 상시 튜터를 배치하거나, 지역복지관에서 월 1회 ‘디지털 다시보기 교실’을 운영하는 방식이 있다. 또 다른 방안은 마을 내 튜터 양성과정이다. 디지털 교육 수료자를 대상으로 튜터 보조 역할을 부여하고, 지역에서 자조모임처럼 운영되게 한다면 더 이상 외부 인력이 없어도 배움은 계속될 수 있다.
또한, 행정기관이 전환하는 디지털 서비스 역시 어르신 눈높이에 맞춰 설계돼야 한다. 단순한 앱 기능을 넘어서, 음성 안내, 큰 글씨, 쉬운 언어로 구성된 UX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디지털 튜터와 같은 관계 기반의 접근이야말로 기술을 가장 인간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인식이다.
기술은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 그 기술이 진짜 사람에게 닿기 위해서는, 사람의 마음부터 두드려야 한다. 어촌 마을의 변화는 그것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준다. 디지털 소외계층이라 불렸던 사람들은 배울 기회가 없었을 뿐, 배울 의지가 없었던 게 아니다. 기회가 닿자, 그들은 스스로 삶을 바꿔냈고 마을을 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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