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고령화 사회를 넘어 초고령 사회에 접어들고 있다. 스마트폰과 키오스크, QR코드, 정부 앱 등 디지털 환경이 일상 전반에 깊이 스며들었지만, 여전히 디지털 소외계층, 특히 고령층은 이 흐름에서 소외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이를 해소하기 위해 디지털 튜터, 배움터, 교육 키트 등 다양한 정책을 시도하고 있지만, 단발성 교육이나 기능 중심의 강의만으로는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주목받는 시도 중 하나가 청소년 멘토와 고령층을 연결하는 디지털 교육 봉사 활동이다. 특히 지방 중소도시 및 농촌 지역에서 이러한 세대 간 연결은 단지 기술 전달을 넘어서 공감, 존중, 공동체의 회복이라는 다층적 효과를 내고 있다.
이 글에서는 실제로 충북 괴산군, 전남 강진군, 경북 의성군 등지에서 운영된 청소년-고령층 디지털 교육 협업 사례를 중심으로, 디지털 소외계층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청소년은 무엇을 느꼈는지, 그리고 이 경험이 마을과 세대에 어떤 가치를 남겼는지를 살펴본다.
디지털 소외계층 고령층과 청소년의 만남, 어떻게 시작되었나
경북 의성군 안계면에서는 2023년 여름부터 ‘디지털 친구 되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이 사업은 군청, 교육청, 청소년센터가 협업하여 고등학생과 마을 어르신을 매칭해 1:1 또는 1:2로 디지털 교육을 진행하는 멘토링 프로그램이었다.
청소년들은 방과 후 또는 주말마다 마을회관을 찾아 어르신과 마주 앉아, 스마트폰 켜기부터 사진 전송, 카카오톡 설치, 키오스크 사용법까지 차근차근 설명했다. 프로그램은 8주간 이어졌고, 총 30쌍의 멘토-멘티가 참여했다.
전남 강진군에서는 청소년 봉사활동의 일환으로 디지털 튜터링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강진고등학교 학생들은 사전 교육을 통해 어르신의 학습 속도, 실수 대응법, 단말기 사용법을 배우고, 이후 5주간 직접 가정 방문 또는 공공시설에서 교육을 진행했다.
이러한 활동은 단순한 기술 봉사를 넘어 ‘세대 간 공감의 장’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학생들은 “할머니가 ‘내가 이걸 하다니, 기적 같다’고 웃으셨을 때 눈물이 났다”고 말했고, 어르신은 “내 손자가 이렇게 가르쳐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이처럼 청소년과 디지털 소외계층의 연결은 시작부터 서로에 대한 호기심과 경계심을 넘어서, 마을 안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는 따뜻한 흐름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디지털 소외계층이 경험한 감정의 회복과 실질적 변화
디지털 교육은 기능만 전달한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다. 특히 고령층이 느끼는 두려움, 수치심, 자기비하의 감정은 학습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그러나 청소년과의 1:1 튜터링은 이 감정을 완화시키는 데 탁월한 효과를 보였다.
충북 괴산군에서 스마트폰 수업에 참여한 79세 이 모 어르신은 “아이들이 나를 안 늙은 사람처럼 대해줘서 고마웠다”며 “틀려도 괜찮다고 말해줘서, 이번에는 끝까지 해보자는 마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복지관 수업에 두 번 참여했다가 도중에 포기했지만, 이번엔 끝까지 수업을 마쳤다.
또 다른 어르신은 “손주에게는 물어보기 어렵지만, 이 아이들은 정말 천천히 설명해줘서 마음이 편했다”고 밝혔다. 디지털 소외계층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누군가 나를 기다려주는 시간과 태도였다.
멘토링을 받은 어르신들 중 다수가 카카오톡 이모티콘 보내기, 유튜브 검색, 병원 예약 등 기능을 반복 연습하며 자신감을 얻었고, 프로그램 종료 후에도 휴대폰을 자주 사용하게 되었다고 응답했다.
즉, 이 교육은 단기적 기술 습득을 넘어 심리적 안정, 일상 활용, 자기 효능감 회복이라는 다면적 효과를 가져온다.
청소년 멘토가 얻은 성장, 단순한 봉사를 넘어서는 경험
교육에 참여한 청소년들도 단순한 봉사 점수를 넘어서, 삶의 태도와 가치관에 변화를 경험했다. 그들은 처음에는 막연히 ‘어르신이 어려워하지 않을까’, ‘내가 설명을 잘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존중과 인내, 관계의 의미를 배워갔다.
강진고 2학년 박서윤 학생은 “할머니가 처음엔 아무 말도 안 하시다가, 3주 차 되니까 제게 농담도 하시고, 나중엔 손편지도 주셨어요. 스마트폰을 배우신 것도 기쁘지만, 제가 그 시간에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었다는 게 정말 감동이었어요”라고 말했다.
의성군 청년센터는 멘토 학생들을 대상으로 사후 설문조사를 실시했고, 90% 이상이 “진로에 영향을 받았다”, “기술을 넘어선 사람 간 소통의 가치를 느꼈다”고 응답했다. 일부 학생은 프로그램 이후에도 자발적으로 마을을 다시 찾아 어르신과 교류를 지속했다.
또한 프로그램은 청소년의 지역 정체성과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는 기회가 되었다.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의 어르신을 이해하고, 디지털 기술을 통해 돕는 경험은 지역에 대한 자부심과 소속감을 키우는 데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디지털 소외계층-청소년 연계 교육, 어떻게 확장할 수 있을까
청소년과 디지털 소외계층을 연결하는 디지털 교육 모델은 실효성과 지속 가능성 모두를 갖춘 성공적인 형태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 구조가 확산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 지역 단위 디지털 멘토링 거버넌스 구축 : 지자체, 교육청, 청소년센터, 복지관, 학교가 공동 운영하는 ‘디지털 세대연결 네트워크’를 구축해, 매년 정기 프로그램으로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
- 청소년 멘토 양성 및 인증 제도 : 청소년에게는 단순한 봉사활동이 아니라, 디지털 튜터 양성 교육 이수 + 실습 + 수료 인증서 발급 구조를 도입하면, 진로 연계 효과도 커진다.
- 교과 연계 및 진로 체험화 : 정보 교육, 사회, 진로 과목과 연계하여, 디지털 소외계층 멘토링을 실습과 연계한 프로젝트 기반 수업으로 설계할 수 있다.
- 프로그램 종료 후에도 관계 유지 지원 : 참여자들이 서로 연락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역 디지털 교실 운영일정 공유, 재방문 기회 제공, 동아리 구성 등 후속 프로그램이 필수적이다.
기술 격차를 줄이는 것은 장비가 아니라 관계다.
청소년이 고령층에게 기술을 가르치고, 고령층이 청소년에게 인내와 존중을 가르치는 이 교차는 단지 교육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회복이자 새로운 배움의 실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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