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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소외계층

디지털 소외계층의 외침: 키오스크 앞에서 멈춰 선 사람들

무인 주문기, 이른바 키오스크는 이제 많은 이들에게 일상적인 풍경이 되었다. 카페, 패스트푸드점, 병원, 영화관, 심지어 지하철 무인 매표소까지… 사람보다 기계가 먼저 고객을 맞이하는 시대다. 효율성과 비용 절감을 내세운 디지털 전환은 빠르고 강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이 흐름에서 기술을 익히지 못한 사람들, 특히 디지털 소외계층은 점점 더 일상으로부터 배제되고 있다.

 

디지털 소외계층의 외침

 

고령층, 장애인, 문자 해독이 어려운 취약계층, 외국인, 저소득층 등 디지털 기기 사용에 불편을 겪는 이들은 사회 곳곳에서 실질적인 '이용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키오스크는 사람과의 최소한의 의사소통마저 차단하는 대표적인 장벽이 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키오스크 확산이 디지털 소외계층에게 실제로 어떤 문제를 야기하는지, 구체적인 현장 사례와 함께 살펴보고, 현재 시스템의 한계, 개선 방향, 그리고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구조적 문제를 분석한다. 디지털은 효율을 넘어 포용의 수단이어야 한다. 기술이 사람을 밀어낸다면, 그것은 발전이 아닌 배제인 것이다.

디지털 소외계층, 키오스크 앞에서 길을 잃다

2024년 11월, 경기도 의정부시의 한 패스트푸드 매장 앞에서 80대 어르신이 키오스크를 5분 가까이 바라보다가 그냥 돌아서는 장면이 있었다. 이 장면은 SNS에 ‘#디지털소외’ 해시태그와 함께 공유되며 주목을 받았고, 수많은 시민들이 “우리 부모님도 저랬다”, “기계 앞에 서 있는 게 얼마나 무섭고 민망한지 모른다”는 댓글을 남겼다.

실제로 서울시 디지털포용팀이 발표한 2023년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자 중 72.4%가 “키오스크 사용이 어렵다”고 답했고, “기계를 이용하다가 결국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한 경험이 있다”는 비율도 58%에 달했다. 하지만 문제는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직원이 없는 매장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키오스크 앞에서 디지털 소외계층이 경험하는 어려움은 다양하다. 작은 글씨, 복잡한 단계, 제한된 시간, 터치 미스, 음성 안내 부재 등 복합적 요인이 작용한다. 특히 시력이 저하된 고령층에게는 시간 제한이 큰 부담이며, 손 떨림이나 인지 지연 등도 실수를 유발한다. 이를 반복 경험한 어르신들은 공공장소에서 창피함을 느끼고 아예 외식 자체를 포기한다.

키오스크 확산의 사회적 맹점, 디지털 소외계층은 어떻게 배제되는가

기업 입장에서 키오스크는 인건비를 줄이고 업무 속도를 높이는 효율적인 시스템이다. 특히 팬데믹 이후 비대면 문화가 확산되면서 무인기기 설치는 ‘시대의 흐름’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디지털 소외계층의 이용권, 접근권, 선택권은 철저히 무시되었다.

무인점포, 셀프 카페, 무인 약국 등은 편리함을 상징하지만, 동시에 ‘이용할 수 없는 사람에게 문을 닫는 시스템’이기도 하다. 사람이 없다는 사실 자체가 어떤 이들에게는 거부와 고립으로 이어진다. 심지어 키오스크를 사용할 수 없는 고객은 ‘불편한 손님’으로 취급되며, 눈치를 보거나 매장에서 거절당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특히 문제는 대체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직원 호출벨이 없는 키오스크, 음성안내가 없는 무인발권기, 대기시간 표시가 없는 터치스크린은 디지털 취약계층에게 ‘당신은 손님이 아닙니다’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구조와 같다.

디지털은 본래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키오스크 시스템은 ‘누가 빠르게 잘 조작할 수 있는가’를 전제로 설계되어, 디지털 소외계층의 속도와 경험을 철저히 배제한다. 기계는 기다려주지 않고, 사람도 없다면, 이들은 사회적 공간에서 서서히 퇴장당한다.

디지털 소외계층이 제안하는 키오스크 개선의 목소리

2023년 말, 서울 구로구에서 진행된 ‘고령층 키오스크 체험 캠프’에서는 어르신들이 다양한 제안을 내놓았다. 가장 많았던 요구는 ▲글자 크기 확대 기능, ▲음성 안내 추가, ▲조작 단계 단순화, ▲도움 요청 버튼의 시각적 명확성 등이었다. 그중 한 어르신은 “버튼이 너무 많아 어디부터 눌러야 할지 모르겠다”며, ‘심플 모드’의 도입을 강력히 요청했다.

이러한 요구는 단지 편의의 문제가 아니다. 디지털 소외계층이 키오스크를 통해 사회에 계속 연결되기 위해서는 기계 자체가 ‘포용’을 전제로 설계되어야 한다. 시각, 청각, 인지 능력이 저하된 사람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유니버설 디자인’이 핵심이다.

몇몇 대형 병원과 관공서에서는 고령자 전용 화면 모드나 단계별 음성 안내, 직원 호출 시스템을 도입한 키오스크를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다. “천천히 알려주고, 큰 글씨가 나오니까 자신감이 생긴다”는 후기가 다수다.

디지털 소외계층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기술을 완벽히 숙지하는 것이 아니라, 틀려도 괜찮다는 환경이다. 사회는 디지털 포용을 말하기 전에, 틀리는 사람을 배려하는 시스템부터 구축해야 할 것이다.

디지털 소외계층과 함께 설계하는 포용적 기술 환경을 위하여

키오스크 시스템이 디지털 소외계층을 배제하지 않기 위해서는 단순히 인터페이스만 바꾸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필요한 것은 기술을 설계하는 단계부터 소외계층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구조, 즉 ‘디지털 접근성 사전 평가’의 제도화다.

첫째, 모든 공공 키오스크 도입 전, 고령층과 장애인의 시범 사용 피드백을 필수화해야 한다. 디자인 단계부터 당사자의 체험을 반영하지 않으면, 기술은 결국 누군가를 밀어내는 방향으로 발전하게 된다.

둘째, 민간 키오스크 사업장에도 ‘대체 서비스 제공’ 의무를 부과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무인 점포라도 화상상담 시스템, 전화주문 접속 장치, 원격지원 화면 등을 통해 소외계층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선택지를 제공해야 한다.

셋째, 디지털 소외계층을 위한 ‘키오스크 디지털 동행 프로그램’을 지역 단위로 활성화해야 한다. 자원봉사자, 청소년 멘토, 공공근로 인력을 활용해 ‘키오스크 사용 보조인’을 지정하거나, QR코드를 통해 실시간 설명 영상을 띄워주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다.

기술은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디지털이 사람을 밀어내고, 기계가 사람을 평가하는 시대라면, 그 기술은 사회적 공공재로서 실패한 것이다. 디지털 소외계층이 키오스크 앞에서 서성이지 않도록, 사회는 지금 행동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