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디지털 선도국가로 손꼽힌다. 정부 민원 시스템은 전자화되었고, 은행 업무는 모바일 앱으로 처리되며, 사회 전반에 비대면 서비스가 일상화되었다. 그러나 기술이 전 국민을 아우르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는 선뜻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다. 특히 읍·면 단위에 거주하는 고령층, 장애인, 저소득층 등 디지털 소외계층은 디지털 변화의 수혜자가 되기보다 소외자로 남아 있다.
정부는 이러한 디지털 격차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교육 정책을 시도하고 있지만, 현장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구조적이다. 특히 광역 단위나 도시권에서는 어느 정도 시스템이 작동하는 반면, 읍·면 단위에선 교육조차 시작되지 못하거나, 교육이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 글에서는 디지털 소외계층을 위한 교육이 왜 읍·면 단위에서 지속되기 어려운지, 그 이유를 행정적, 물리적, 사회적 측면에서 분석하고, 실질적인 개선방안을 함께 제시하고자 한다. 디지털 포용이란 단지 기술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손길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닿도록 설계하는 과정임을 우리는 다시금 상기해야 한다.
디지털 소외계층을 위한 교육이 읍·면에 닿지 못하는 구조적 이유
디지털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한 정부의 교육 정책은 매년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시·군·구 중심의 행정 단위에서만 기획 및 운영되고 있어, 실제로 디지털 교육이 절실한 읍·면 단위의 소외계층에게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우선 교육 인프라 부족이 가장 큰 문제다. 읍·면 단위에는 평생학습관, 주민자치센터, 공공 도서관 등의 교육시설 자체가 없는 경우가 많으며,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실습용 기기, 와이파이 환경이 열악한 곳도 많다. 교육이 열려도 장소와 장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형식적인 운영에 그칠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전문 강사의 수급 문제다. 대부분의 디지털 튜터는 도시권에서 활동하며, 농촌 지역까지 장거리 이동해 교육을 진행해야 한다. 이로 인해 강사의 이동 시간 대비 교육 시간 효율이 떨어지고, 일정 상의 제약으로 반복 학습이 불가능해진다. 그 결과, 고령층 수강자는 “배워도 금방 잊어버린다”며 자조하고, 교육기관은 “반복 수요를 대응할 여력이 없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홍보와 접근성 문제가 존재한다. 디지털 교육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어르신이 많고, 신청 방법이 온라인 중심으로 구성돼 있어 역설적으로 ‘교육을 받으려면 디지털을 알아야 하는’ 아이러니한 구조이다.
디지털 소외계층이 체감하는 읍·면 교육 현장의 불일치
2024년 상반기,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에서는 디지털 배움터가 일주일간 운영되었다. 모집 인원은 20명이었지만 실제 수강자는 9명에 불과했다. 강사는 스마트폰 사진 편집, QR코드 촬영, 금융 앱 사용 등의 기본 커리큘럼을 제시했지만, 교육 후 작성된 만족도 조사에서는 “내가 쓰는 기능은 하나도 없었다”, “앱 설치도 못했는데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이처럼 표준화된 커리큘럼이 현장의 실제 수요와 맞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부분의 어르신은 “전화 거는 법”, “문자 보는 법”, “카카오톡 메시지 확인”, “사진 앨범 보기”와 같은 기초 중의 기초 기능을 원하는데, 교육은 초반부터 앱 설치나 계정 로그인, 인증서 설치 등으로 넘어가 버린다.
더 큰 문제는 반복 학습의 부재로 인해 학습이 체화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읍·면 단위 교육은 대체로 1~2회로 끝나는 구조이며, 중간에 빠진 수강자는 다시 들어올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 “다음 달에 또 들으면 돼요”라는 말은 교육 현장에선 그저 말뿐이다. 지역 상황에 따라 다음 교육 일정은 몇 달 후로 밀려나기 일쑤다.
이로 인해 디지털 소외계층 어르신은 교육은 ‘한 번 배우는 것’이 아니라 ‘매번 새롭게 다시 물어봐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고, 이는 곧 자존감 저하와 학습 포기로 이어질 것이다.
디지털 소외계층의 목소리를 담지 않는 교육 설계, 문제는 수요자 불일치
읍·면 단위 교육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현장 목소리가 교육 설계에 반영되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디지털 교육 프로그램은 중앙정부나 광역시 단위에서 일괄 기획되어, 실제 수강자의 생활 맥락과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공공앱으로 병원 예약하기”라는 항목이 포함되어 있지만, 해당 마을에는 스마트 예약 시스템을 도입한 병원이 존재하지 않거나, 어르신이 스마트폰에 데이터를 아끼기 위해 앱을 지우는 경우가 허다하다. “버스 시간 검색 앱”을 가르치지만 정작 마을에 하루 한 대밖에 버스가 없다는 점도 고려되지 않는다.
또한 교육이 일방향적이다 보니, 어르신들은 교육 중간에 질문하기도 어렵고,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설명하기 어려워한다. 디지털 소외계층 어르신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 기능을 써보세요”가 아니라, “당신이 평소에 어려워하는 건 무엇인가요?”라고 묻고 듣는 과정이다.
즉, 수요자 중심 교육 설계가 아닌 공급자 중심 프로그램이 읍·면 단위에서는 더욱 취약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반복될수록 어르신들은 “배웠지만 쓸 데 없다”, “나랑 상관없는 얘기다”라는 생각으로 물러난다.
디지털 소외계층을 위한 읍·면 단위 교육,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가?
첫째, 지역 중심의 분산형 학습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읍·면 단위 교육을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중앙 집중형 교육 체계를 탈피하고, 지역 내 마을회관, 주민자치센터, 도서관 등 소규모 공간을 활용한 상시 학습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통해 “교육받는 날”이 아니라, “궁금하면 언제든지 물어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둘째, 디지털 교육 전담인력 배치를 제도화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주민센터 복지담당자나 공공일자리 인력이 교육을 병행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전문성과 지속 가능성 측면 모두에서 한계가 있다. 읍·면 단위별로 디지털 활동 지원사 혹은 튜터를 배정하여 전담 운영하게 해야 한다.
셋째, 중앙 커리큘럼에 지역 수요를 반영할 수 있는 유연한 설계 구조가 도입되어야 한다. 마을 맞춤형 교육 메뉴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어르신의 인지 수준에 따라 난이도를 조절할 수 있는 ‘레벨형 콘텐츠’ 개발이 병행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속 가능한 반복 교육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한 번의 교육으로 충분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동일한 강사가 정기적으로 재방문하여 학습 이력에 따라 진도를 조절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마치 초등학교 담임제처럼, 익숙한 사람과 계속해서 함께 배우는 환경은 어르신에게 가장 효과적인 교육 방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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