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디지털 소외계층

디지털 소외계층의 새로운 배움터, 노인회관이 디지털 교실로 변신하다

스마트폰을 한 손에 쥐고, 화면을 터치하면서 "이거 맞나?" 조심스레 묻는 어르신. 대답하는 이는 교사도, 공무원도 아닌 같은 마을의 또 다른 어르신이다.
이러한 풍경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전국 각지의 농촌 노인회관이 최근 몇 년 사이, 디지털 소외계층 고령층을 위한 맞춤형 IT 교육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소외계층의 새로운 배움터

과거 노인회관은 주로 담소 나눔, TV 시청, 마을회 회의 장소로 활용되었으나, 이제는 생활 속 IT 기술을 배우는 배움터이자, 고령층 디지털 포용의 핵심 거점으로 진화하고 있다. 복지관이나 시청까지 이동하기 어려운 지방의 어르신에게 있어, 가장 가까운 노인회관이 ‘디지털 문해력’의 첫걸음을 내딛는 장소가 되고 있다.

이 변화는 단순히 공간의 전환이 아니라, 기술에 대한 접근성과 심리적 장벽을 동시에 낮추는 구조적 실험이기도 하다. 본 글에서는 실제 사례를 중심으로 노인회관 기반 디지털 교육이 어떻게 기획·운영되고 있는지, 어떤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는지, 그리고 이를 지속 가능한 정책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방안을 다각도로 살펴보자.

디지털 소외계층을 위한 마을 기반 교육, 왜 노인회관이어야 했나?

디지털 소외계층인 고령층에게 있어 교육 참여 자체가 장벽이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동성’과 ‘심리적 거리감’이다.
특히 지방 소도시나 읍·면 단위 농촌에서는 교육이 열리는 복지관이나 시청까지 이동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교통 수단이 제한적이다.

또한 복지관이나 공공기관은 ‘공부하는 곳’, ‘젊은 사람이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해, 고령층은 심리적으로 위축되기 쉽다. 반면 노인회관은 이미 익숙한 장소이자, 자신이 주인처럼 느끼는 공간이다. 오랜 친구들과 함께 앉아있는 분위기에서 교육이 진행되면, 그 자체로 심리적 안정감을 느낀다.

전라남도 장성군의 한 마을에서는 노인회관에 와이파이와 태블릿 PC, 스마트폰 실습용 기기, 교육용 TV를 설치하고, 매주 2회 ‘찾아가는 디지털 튜터링’을 운영하고 있다. 교육 내용은 카카오톡 설치부터 사진 전송, 키오스크 체험, 유튜브 검색, 마을 날씨 확인 등 어르신의 생활과 밀접한 기능 중심으로 설계되었다.

교육 참여율은 인근 복지관에서 열리던 프로그램보다 두 배 가까이 높았고, 중도 포기자 수는 0명이었다. 이처럼 노인회관 기반 교육은 ‘장소 자체가 교육 동기’를 자극하는 모델로 주목받는다.

디지털 소외계층의 눈높이에 맞춘 맞춤형 교육 콘텐츠란 무엇인가?

노인회관에서 진행되는 디지털 교육은 그 내용과 방식 또한 기존 교육과는 차별화되어 있다.
강사는 보통 디지털 튜터 1인당 2~3명의 어르신을 맡아, 1:1 또는 소그룹 방식으로 수업을 운영하며, 어르신의 수준에 따라 콘텐츠를 유연하게 조정한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을 ‘전혀 사용하지 못하는 어르신’에게는 전원 켜기, 홈화면 이해, 문자 읽기부터 시작하며, 이미 카카오톡을 설치한 분에게는 사진 전송, 단톡방 사용법, 이모티콘 보내기 등으로 내용이 맞춤화된다. 이 과정을 통해 학습자는 좌절하지 않고, 반복 가능한 속도로 학습을 유지할 수 있다.

특히 유의미한 점은 ‘실생활 중심의 커리큘럼’ 설계다. 경상북도 상주시의 한 교육에서는 마을버스 시간표 확인 앱, 농협 계좌 이체 방법, 비닐하우스 온도 알림 서비스 설정 등 고령층의 실제 필요를 반영한 콘텐츠가 큰 호응을 얻었다.

또한 교육에는 인쇄 가능한 복습 자료, 음성 설명 영상, 큼지막한 안내 스티커 등 다양한 보조 교구가 함께 제공되어, 교육 후에도 집에서 스스로 복습이 가능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는 교육의 지속성과 자기주도 학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디지털 소외계층 고령층이 느낀 변화: 단순한 기능이 아닌 삶의 확장

노인회관에서 교육을 받은 어르신들은 단순한 기능 습득 이상의 정서적, 사회적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전북 고창군의 한 교육 참여자는 “처음엔 전화만 받던 기계였는데, 지금은 그걸로 손주 사진도 보고, 친구랑 안부도 주고받아요”라고 말하며 자신이 세상과 연결되었다는 감각을 강조했다.

어르신의 이러한 변화는 크게 세 가지 효과로 나뉜다.

① 정서적 회복: 반복된 학습을 통해 기능을 익히는 동안, 어르신은 “내가 못하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감정을 되찾는다. 이는 우울감 완화, 자존감 회복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② 사회적 참여 확장: 교육 후 카카오톡, 밴드, 유튜브 등을 사용할 수 있게 된 어르신은 마을 단체 채팅방 참여, 마을 소식 공유, 온라인 복지 신청 등에 직접 참여하면서,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사회적 연결감을 경험하게 된다.

③ 정보 활용 능력의 증가: 복지 신청, 건강 정보 탐색, 농작물 가격 확인 등 일상 정보 접근이 가능해지며, 어르신들은 자신이 사회의 ‘수혜자’가 아닌 ‘주체’로서 기능한다는 자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노인회관이라는 익숙한 공간에서,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 배우며 차근차근 쌓아간 결과라는 점에서 교육적, 사회적 의미가 깊을 것이다.

노인회관 기반 디지털 교육의 지속성과 확산을 위한 정책 제안

노인회관을 활용한 디지털 소외계층 교육은 그 가능성을 이미 입증했지만, 이를 지속 가능한 모델로 확산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다음은 현실 기반의 정책 제안이다:

① 노인회관 내 ‘디지털 교실’ 공식화 및 예산 편성 : 노인회관에 IT 기기, 와이파이, 교육 기자재를 공식 예산 항목으로 반영하고, 정기 교육을 위한 지자체 예산 배정이 필요하다.

② 디지털 튜터의 안정적 인건비 확보 : 현재 대부분의 튜터는 공공근로, 단기 아르바이트에 의존하고 있어 교육 연속성이 낮다. 교육청-지자체-복지관 간 협업을 통한 튜터 정규직화 또는 활동비 지원이 필수적이다.

③ 마을 단위 커리큘럼 설계 및 자율 운영 지원 : 전국 동일한 커리큘럼보다, 각 마을의 상황·어르신 수준·생활습관에 맞는 교육 설계를 마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자율 운영비를 지원한다.

④ 수료자 중심 자조모임 및 멘토링 체계 구축 : 교육 수료 후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마을 내 ‘디지털 도우미 어르신’을 육성하여 신입 수강자를 돕는 구조 형성이 필요하다.

⑤ 성과 지표 재정의: 단순 참여 수보다 ‘감정 변화’, ‘생활 변화’ 중심 평가 전환 : 교육 효과는 ‘기능 숙련’보다 ‘삶의 질 변화’로 측정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정성평가 체계를 개발·도입해야 할 것이다.

디지털 포용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마을 한가운데 있다

디지털 포용은 거창한 장비나 최첨단 기술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어르신이 앉던 오래된 의자, 수건 걸린 난로 옆, 늘 이야기를 나누던 그 공간에서 누군가 손을 잡고 “이건 이렇게 누르시면 돼요”라고 말해줄 때, 진짜 디지털 포용은 시작된다.

노인회관을 디지털 소외계층을 위한 교육 허브로 전환하는 일은 단순한 정책 시도가 아니라, 공동체 복원의 시작이자 정보 평등의 실현이다.
이제 전국 곳곳의 노인회관이 디지털 교실이 되어, 마을 전체가 다시 살아나는 흐름으로 확산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