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소외계층 장애인을 위한 지방 소도시 맞춤형 디지털 보조기기 교육 사례 분석
기술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말은 진리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그 기술이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주어졌을 때에만 그렇다. 정보와 서비스가 빠르게 디지털화되는 사회에서, 신체적·인지적 제약이 있는 장애인들은 여전히 소외의 경계에 놓여 있다. 특히 지방 소도시에 거주하는 장애인의 경우, 복잡한 디지털 환경에 적응할 기회조차 제한되고 있다. 단순한 인터넷 사용은 물론, 공공기관 민원 처리, 병원 예약, 금융 업무, 일상 커뮤니케이션조차 ‘디지털 기기’라는 매개체를 통해 이루어지는 지금,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디지털은 또 하나의 ‘문턱’이자 ‘장벽’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디지털 소외계층 중에서도 장애인을 위한 접근성 중심의 교육과 기기 지원의 중요성을 다시금 떠올리게 만든다. 단순한 기기 제공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실제 환경에서 기기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장애의 특성과 욕구에 맞춰 어떤 방식으로 기술을 적용해야 하는지, 그리고 지속 가능한 지원 체계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본 글에서는 경상북도 문경시와 충청남도 보령시 등 지방 소도시에서 운영된 장애인 대상 맞춤형 디지털 보조기기 교육 프로그램의 사례를 통해, 디지털 소외계층 장애인들이 실제로 어떤 변화를 경험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단순한 ‘기술 보급’이 아닌, 진정한 ‘디지털 포용’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디지털 소외계층 장애인을 위한 맞춤형 교육 설계와 실행
문경시 장애인복지관에서는 2024년부터 ‘ICT 기반 자립생활 지원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지역 내 장애인을 위한 디지털 보조기기 교육을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히 기기를 나눠주는 데 그치지 않고, 장애 유형에 따른 맞춤형 커리큘럼을 구성한 점에서 기존의 교육과 차별화되었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 기반 화면 낭독기 사용법 교육, 뇌병변 장애인을 위한 터치패드 조작 훈련, 지적 장애인을 위한 그림 중심의 메뉴 설명 방식 등이 그 핵심이다.
교육은 총 8주 과정으로 구성되었으며, 기초 과정과 심화 과정으로 나뉘었다. 기초 과정에서는 디지털 보조기기(예: 음성지원 스마트폰, 터치 확대기, 화면 읽기 앱)의 사용법과 설치법을 다루었고, 심화 과정에서는 공공기관 앱 이용, 영상통화, 디지털 금융 등의 실생활 응용 기능을 실습하는 시간이 포함되었다. 교육 대상자는 사전 면담을 통해 디지털 활용 수준과 장애 유형, 현재 사용 중인 기기를 파악하여 교육 내용과 방식이 달리 적용되었다.
이 과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1:1 매칭형 교육’이라는 점이었다. 한 명의 강사가 한 명의 장애인과 짝을 이루어 교육을 진행했으며, 필요 시 보호자나 활동보조인이 함께 참여하도록 하여 학습의 연속성과 정서적 안정감을 높였다. 교육은 복지관, 도서관, 지역학교, 또는 집에서까지도 이동 교육이 가능하게 운영되었으며, 기기를 지급받은 후 실제 생활에서 활용하는 과정을 함께 모니터링했다.
디지털 소외계층 장애인의 기술 습득이 가져온 삶의 변화
디지털 보조기기를 통해 가장 뚜렷한 변화를 경험한 것은 일상 속 자립 활동의 확대였다. 문경시의 30대 청각장애인 이모 씨는 자막 기능이 포함된 영상통화 앱을 익힌 후, 과거 문자로만 소통하던 가족과 영상통화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그는 “화면 속 자막을 보며 어머니 얼굴을 동시에 본다는 건 내가 꿈꿔본 적도 없는 경험이었다”고 전했다. 같은 복지관의 60대 지체장애인 박모 씨는 음성 명령 기능이 탑재된 보조 스마트폰을 통해 일일 일정 관리와 건강체크 앱을 사용하는 법을 배운 뒤, 매일 자신의 약 복용 시간을 알람 설정하고, 병원 진료 예약까지 스스로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보령시의 사례에서는 특히 시각장애인을 위한 ‘스크린 리더’ 교육이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음성 피드백을 통해 문자와 앱 내용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능을 익힌 시각장애인 고모 씨는 이제 택배 위치 추적, 카카오톡 음성 메시지 전송, 지역 소식 뉴스 듣기 등을 스스로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정보를 얻을 수 없다는 막막함에서 벗어나니 세상이 다시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또한 디지털 교육을 받은 장애인들은 공공서비스 접근에도 훨씬 능동적이 되었다. 정부24, 국민비서, 복지로 등 주요 앱의 사용법을 익힌 후에는 직접 민원 신청을 하거나 장애수당 수급 내역을 조회하는 등 행정서비스 이용이 가능해졌다. 이는 단지 디지털 기술의 습득을 넘어,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챙길 수 있는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더불어 이 과정에서 장애인의 자존감이 회복되고, 가정 내에서의 역할과 책임감도 커졌다는 정성적 평가가 다수 확인된다.
디지털 소외계층 장애인을 위한 교육의 확산과 지역사회의 인식 변화
디지털 보조기기 교육은 비단 참여자 개인의 변화에만 그치지 않고, 지역 사회 전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문경과 보령의 복지기관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장애인을 대하는 지역사회 인식이 바뀌고 있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장애인이 디지털 기기를 다루는 모습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지역 주민들이, 이제는 “저 어르신이 스마트폰으로 민원을 넣었다더라”, “카카오맵으로 길을 찾아가더라”는 이야기를 듣고 놀라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교육을 수료한 장애인들이 다시 ‘디지털 멘토’로 활동하는 경우도 생겼다. 충남 보령에서는 한 시각장애인이 같은 장애유형을 가진 이웃에게 스크린 리더 기능을 직접 알려주는 모습이 지역 주민센터에서 목격되었고, 이 사례는 마을 회보에 실리며 주민들 사이에 긍정적인 화제로 떠올랐다. 이는 디지털 소외계층이 단지 지원 대상이 아니라, 지식을 전달하는 사회적 자산으로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였다.
또한 디지털 보조기기 교육은 장애인 가족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보호자들은 “이제 내가 없어도 간단한 건 스스로 한다”며, 심리적 부담이 줄어들었다는 반응을 보였고, 활동보조인들도 반복적인 업무에서 벗어나 장애인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서비스를 개선할 수 있었다. 이처럼 한 명의 디지털 소외계층 장애인이 변화를 경험하면, 그 여파는 가족과 공동체까지 확산되어 구조적인 인식 전환으로 이어진다.
디지털 소외계층 장애인을 위한 지속가능한 지원 방안
디지털 보조기기 교육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냈지만, 더 많은 장애인이 이 같은 기회를 누리기 위해선 구조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첫 번째로, 지속적인 사후관리와 반복학습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현재 많은 교육이 일정 기간에 한정되어 진행되기 때문에, 일정 시간이 지나면 기능을 잊거나 기기 오류에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주기적인 점검과 재교육 시스템이 병행되어야 한다.
두 번째로는 보조기기와 콘텐츠의 다양화가 필요하다. 현재 대부분의 기기가 시각, 청각, 지체장애 위주로 설계되어 있으나, 발달장애, 자폐스펙트럼, 정신장애인 등 다양한 인지적 특성을 가진 사용자에 대한 지원은 부족한 상황이다. 기기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표준화된 가이드라인과, 맞춤형 앱 개발이 확대되어야 한다.
세 번째로는 지역사회 내 협력 거버넌스 구축이다. 디지털 교육은 복지관 혼자 힘으로 감당하기 어렵다. 지자체, 교육청, IT기업, 대학 등 지역 내 다양한 주체들이 협업하여 커리큘럼을 설계하고, 인력을 양성하며, 지속적인 프로그램 운영을 위한 예산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장애 당사자의 목소리를 반영한 정책 설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까지의 디지털 접근성 정책은 공급자 중심, 기관 중심으로 운영되어 왔다. 하지만 실제 사용자인 장애인의 입장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방식이 가장 도움이 되는지를 반영해야만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디지털 소외계층 장애인이 ‘배움의 주체’에서 나아가 ‘정책 참여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제도 설계와 평가 단계에서 당사자의 의견 수렴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