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소외계층을 위한 노인 맞춤형 콘텐츠, 직접 만든 마을 사례집의 힘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대한민국에서는 디지털 기술과 사회의 연결성이 점점 더 밀접해지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 특히 지방이나 농어촌 지역에 거주하며 사회적 관계망이 제한적인 고령자들은 이러한 흐름에서 쉽게 소외되곤 한다. 이들은 흔히 ‘디지털 소외계층’으로 불리며, 스마트폰 사용이 어려워 공공서비스 접근이 제한되고, 키오스크 앞에서 당황하거나, 정부의 온라인 중심 정책에서 실질적으로 배제되는 현실을 겪는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은 개인의 능력 부족이 아닌, 오히려 시스템이 고령자들의 특성과 생활환경을 반영하지 못한 데에서 비롯된 구조적인 문제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노인을 위한 디지털 교육 콘텐츠를 ‘위에서 내려주는’ 방식이 아니라, ‘마을 스스로 제작하는’ 방식으로 풀어내는 지역 공동체 중심의 시도가 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이 직접 고령자의 눈높이에 맞춘 교육 자료를 기획·제작하고, 그 내용을 마을 사례집의 형태로 정리해 공유함으로써 보다 실질적이고 지속 가능한 교육 환경을 조성하려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실제로 마을 주민이 주도해 제작한 노인 대상 디지털 교육 콘텐츠와 그 사례집의 내용을 중심으로, 디지털 소외계층을 위한 교육 방식의 새로운 모델을 살펴본다. 교육의 주체가 바뀌면, 결과도 바뀐다. 현장의 언어로 구성된 교육 콘텐츠가 왜 효과적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분석해보자.
디지털 소외계층 노인에게 ‘외부 콘텐츠’가 가지지 못한 한계
기존의 디지털 교육은 주로 공공기관이나 민간 전문기관이 제작한 콘텐츠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콘텐츠는 일반적으로 ‘모든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거나, 기초기능 중심으로 표준화된 형태로 제공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디지털 소외계층, 특히 고령 노인층에게는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 기본 사용법을 설명하는 영상에서 너무 빠른 설명 속도나 전문 용어의 빈번한 사용, 세대 간 간극이 큰 사례들 등은 오히려 교육에 대한 불안과 거부감을 심화시켰다. 나이에 따라 정보 처리 속도와 기억력, 기기 활용의 감각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를 고려하지 않은 일률적 교육 자료는 교육 효과를 반감시켰다.
또한 교육 현장에서 활용되는 교재나 영상 자료 대부분이 도시 중심 생활패턴을 기준으로 제작된다는 점 역시 문제다. 예컨대 인터넷 쇼핑, 온라인 택시 호출, 배달 앱 이용법 등을 중심으로 구성된 교육 콘텐츠는 농촌 지역 고령자들에게는 실생활과 동떨어진 내용으로 느껴질 수 있다. “우린 택시도 없고, 마트도 배달 안 오는데 이걸 왜 배워야 하나”라는 불만은 교육 과정에서 자주 등장하는 반응 중 하나다. 이는 단지 콘텐츠 내용의 문제가 아니라, 그 콘텐츠가 누구를 위해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직접 만드는 교육 콘텐츠’는 기존 접근법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마을의 어르신들이 자주 겪는 상황, 실제 사용하는 앱, 지역 사정에 맞는 정보 등을 반영한 콘텐츠야말로 진정한 수요자 맞춤형 교육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콘텐츠의 내용은 물론, 전달 방식까지 고령자의 이해 수준에 맞춘 이 사례들은 단순한 시도가 아닌, 교육의 근본을 되묻는 성찰에서 시작되었다.
디지털 소외계층 위한 마을 맞춤형 콘텐츠 제작의 과정과 방식
지역에서 제작된 디지털 교육 콘텐츠는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마을 구성원 간 협업을 통해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에 큰 의미가 있다. 강원도 평창군의 한 마을에서는 마을 부녀회와 노인회, 그리고 청년회가 공동으로 참여해 ‘어르신 스마트폰 활용법’을 주제로 마을 사례집을 만들었다. 이들은 우선 마을의 어르신들이 스마트폰 사용 중 겪는 대표적인 어려움을 수집했고, 그 중 ‘카카오톡 사진 전송’, ‘건강보험 어플 설치 및 조회’, ‘버스 시간 확인’, ‘긴급전화 등록’ 등 실생활에 필요한 항목을 중심으로 교재 목차를 구성했다.
제작 과정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언어’와 ‘순서’였다. 예를 들어 “앱을 실행한 후 우측 상단 메뉴를 클릭하세요”라는 표현은 “그림 있는 버튼을 살짝 눌러보세요”처럼 어르신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말로 바뀌었다. 또한 하나의 동작을 여러 개의 작은 단계로 나눠 설명하고, 각 단계마다 실제 화면을 캡처해 삽입함으로써 따라하기 쉬운 구성을 갖췄다. 이를 위해 마을 청년들이 스마트폰 화면을 캡처하고, 그 위에 설명을 붙이는 작업을 진행했으며, 중간 점검 과정에서는 실제 어르신을 대상으로 시범 교육을 통해 이해도를 확인하기도 했다.
이렇게 완성된 교육 자료는 인쇄물 형태의 사례집으로 제작되어 마을회관과 경로당, 복지시설 등에 배포되었고, 일부는 PDF 파일로 변환되어 마을 단톡방을 통해 공유되기도 했다. 콘텐츠 자체가 단순하면서도 지역 현실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학습자들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교육 현장에서는 “이건 우리 마을 이야기니까 귀에 쏙쏙 들어온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어르신들이 자주 묻는 질문이나 실수하는 부분은 사례집에 부록 형태로 따로 정리되어, 복습용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디지털 소외계층 노인에게 나타난 실질적 변화
마을 사례집 기반의 디지털 교육이 가장 큰 효과를 보이는 지점은 ‘자신감 회복’이다. 기존에는 강사가 아무리 잘 설명해도 머릿속에 남지 않고, 실생활에서 활용하지 못해 좌절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마을에서 만든 콘텐츠는 ‘나와 같은 사람의 경험’을 바탕으로 구성되었기에, 학습자가 내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고, 익힌 기능을 실제 생활에서 활용하는 빈도도 높아졌다.
경북 의성군의 한 마을 사례에서는 교육을 받은 78세 어르신이 “이제는 버스 시간표 보는 건 혼자서도 한다”며 매일 마을버스를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확인하고, 진료 예약도 앱을 통해 스스로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는 이전까지는 병원 방문 시 접수를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거나, 일정을 직접 확인하지 못해 불편함을 겪었다. 하지만 사례집의 안내대로 몇 번 따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몸에 익었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큰 자신감을 줬다고 전했다.
또 다른 변화는 공동체 내 역할의 변화다. 교육 이후 일부 어르신은 자신이 배운 것을 바탕으로 이웃 어르신에게 스마트폰 사용법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마을 사례집은 이 과정에서 ‘참고서’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해가 가지 않거나 기억이 나지 않을 때 책자를 펴고 같이 확인하며 설명하는 식이다. 이는 디지털 교육의 수혜자가 곧 교육자가 되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함으로써, 마을 전체의 디지털 문해력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한다.
디지털 소외계층 맞춤 콘텐츠, 전국으로 확산 가능한 모델
마을 단위에서 제작된 디지털 교육 콘텐츠는 지역 내에서 강한 효과를 보였을 뿐 아니라, 다른 마을로의 확산 가능성도 높다. 실제로 일부 지자체는 이와 같은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하여 유사한 모델을 도입하거나, 교육자료 공유 플랫폼을 통해 지역 간 콘텐츠 교류를 활성화하고 있다. 이는 교육의 표준화와 동시에 다양화를 이뤄낼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이다. 표준화는 콘텐츠 제작과정의 체계성을 확보하고, 다양화는 각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세부 설계를 가능하게 한다.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략이 필요하다. 우선 교육 콘텐츠 제작을 위한 지역 커뮤니티 지원이 강화되어야 한다. 단순한 교육비 지원을 넘어, 마을 주민이 직접 교재를 만들 수 있도록 장비, 공간, 전문 인력 등을 제공하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또한 지역 간 교육 콘텐츠를 공유하고 평가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도 필요하다. 마을 사례집이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전국의 디지털 소외계층 노인 교육을 위한 ‘살아있는 자료’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이러한 콘텐츠 제작과정에 고령자 스스로가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확대해야 한다. 사진을 찍고, 설명을 적고, 편집 과정을 경험하는 과정 자체가 학습이고, 자존감 회복의 계기가 된다. 마을에서 시작된 작은 사례집 한 권이, 전국의 노인들에게 디지털 세상으로의 문을 열어주는 안내서가 될 수 있다면, 그 교육은 단지 기능 전달을 넘어서 한 사람의 삶을 바꾸는 진정한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