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소외계층 고령층이 만든 마을 블로그, 커뮤니티를 살린 기적의 기록
“글은 못 써도 사진으로 우리 마을을 보여줄 수는 있잖아요.”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의 작은 마을에 사는 김화자 어르신(75세)은 스마트폰으로 논두렁의 들꽃을 찍고, 마을회관 앞 정자에 앉은 이웃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 그 사진은 곧 ‘우리 마을 이야기’라는 이름의 블로그에 올라간다. 어르신은 블로그를 운영하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이 아니지만, 여기도 사람이 살고 있어요.”
이 마을은 1년 전까지만 해도 스마트폰은 있어도 전화만 받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문자 메시지를 여는 방법도 모르는 이들이 많았고, 앱이나 블로그는 더욱 먼 이야기였다. 하지만 지역 복지관에서 시작된 스마트폰 기초 교육을 계기로 마을의 고령층, 즉 디지털 소외계층의 일상에 큰 변화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전원 켜기, 사진 찍기 같은 간단한 기능부터 익혔고, 나중에는 카카오톡을 활용해 소식을 나누고 사진을 공유하면서 점차 디지털 문해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던 중, 교육을 마친 몇몇 어르신이 ‘우리도 블로그를 운영해 보자’며 직접 마을 블로그 개설에 나선 것이다.
그 결과, 지금 이 마을에는 고령층이 운영하는 블로그가 존재한다. 단순한 취미나 실습 결과물이 아닌, 마을의 기록을 남기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살아 있는 소통의 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디지털 소외계층의 자발적 디지털 콘텐츠 생산이라는 점에서, 이 사례는 매우 특별하다. 이 글에서는 복지관의 스마트폰 교육을 통해 블로그를 개설하게 된 고령층이 공동체 안에서 어떤 변화를 이끌었는지, 그리고 이 변화가 마을 전체에 어떤 파장을 일으켰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디지털 소외계층 고령층이 주도한 블로그, 어떻게 시작됐을까
이 마을의 디지털 변화는 2023년 초 복지관이 개설한 8주간의 스마트폰 수업에서 비롯되었다. 대상은 만 65세 이상 고령자였고, 커리큘럼은 매우 기초적인 수준에서 출발했다. 전원 켜기, 터치하기, 사진 찍기, 문자 메시지 열어보기 같은 것부터 배우기 시작한 어르신들은 점차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수업 막바지에는 “우리끼리 마을 사진을 올릴 블로그 하나 만들어보자”는 제안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마을 블로그의 이름은 ‘단밀 이야기방’이었다. 초기에는 사진 위주의 게시물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텍스트는 많지 않았고, 대부분은 간단한 설명이나 날짜 정도였다. 어르신 중 일부는 사진 찍기를 맡았고, 다른 이들은 모인 사진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실제로 블로그 관리자는 자녀나 복지관 사회복지사의 도움을 받아 글을 올렸지만, 사진과 내용은 모두 고령자 스스로가 준비한 것이었다.
어르신들의 콘텐츠는 주로 마을 일상에 집중됐다. 논밭에서 일하는 풍경, 경로당 생신 모임, 봄나물 캐는 모습, 복지관 프로그램 참가 후기 등 작지만 따뜻한 이야기들이 블로그에 축적되었다. 몇 개월이 지나자 마을 사람들도 블로그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자녀들은 부모님의 블로그 활동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되었다. 마을 밖 친척들이 블로그를 보고 전화해주면서, 어르신들의 활동은 단지 기술을 배우는 수준을 넘어 관계 회복과 공동체 연결의 통로로까지 작용하였다.
디지털 소외계층의 블로그 운영이 마을 공동체에 가져온 효과
블로그가 자리 잡자, 마을의 소통 구조에도 변화가 생겼다. 공지사항이나 일정 안내 같은 정보는 더 이상 마을 방송에만 의존하지 않게 되었고, 블로그를 통해 공지를 확인하거나 행사의 사진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카카오톡 단체방과 블로그가 연계되면서 빠른 소통이 가능해졌고, 정보 누락이 줄었다. 스마트폰을 처음 배우던 고령층이 이제는 정보 전달의 주체로 바뀐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정서적인 부분에서 나타났다. 블로그에 자신의 모습이 올라가고, 그 사진에 누군가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남겨주는 경험은 어르신들에게 큰 감동이었다. 한 어르신은 “우리 마을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어요. 사진으로 보니 정말 자랑스럽더라고요.”라고 말했다. 또 다른 어르신은 “부산에 사는 딸이 블로그 보고 전화를 해서 ‘엄마 멋져요’라고 하더라고요. 그날은 밤새 잠이 안 왔어요.”라며 웃었다.
블로그 운영은 단순한 기술 습득을 넘어서 자존감 회복으로 이어졌다. 내가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를 갖고 있다는 감각은, 특히 사회적 관계에서 소외되기 쉬운 고령층에게 매우 큰 의미를 가진다. 디지털은 차가운 기술이지만, 이를 통해 연결된 감정은 따뜻했고, 마을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다시 세우는 계기가 된다.
디지털 소외계층 고령층이 콘텐츠를 꾸준히 만들 수 있었던 이유
많은 디지털 교육이 단발성에 그치거나, 수업 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사례가 많은 가운데 이 마을의 블로그가 1년 넘게 운영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실생활 중심의 학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블로그에 올릴 사진을 찍는 것은 학습이 아니라 생활 자체였다. 농사짓는 중간, 산책하다가 꽃을 보면 사진을 찍고, 행사나 모임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사진을 모으게 되었다. 생활과 교육이 하나로 통합된 것이다.
둘째는 공동 운영이라는 시스템이다. 혼자서 모든 것을 담당했다면 피로감이나 부담감으로 운영이 지속되기 어려웠겠지만, 사진 담당, 내용 정리 담당, 업로드 담당 등 역할을 나누었기 때문에 부담이 분산되었고, 책임감도 공유되었다. 이러한 협업 구조는 공동체 내 신뢰감도 높이고, 서로를 도와주며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만들었다.
셋째는 관계적 피드백이다. 블로그를 통해 이웃, 자녀, 외부 사람들과의 교류가 생겼고, 이 피드백이 지속적인 동기를 부여했다. 누군가 “사진 예쁘게 잘 찍으셨네요”, “어르신 글 잘 읽었습니다”라고 말해주는 것이 힘이 되어 다음 콘텐츠를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디지털이 어려운 이유는 기능 자체가 아니라, 칭찬받을 기회가 없어서였는지도 모를 것이다.
디지털 소외계층 블로그 운영, 확산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이 마을의 블로그 사례는 단지 아름다운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전국의 다른 마을에서도 충분히 시도할 수 있고, 실제로 복지관이나 주민센터 중심으로 제도화하면 더 큰 확산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실천 가능한 제도적 지원이다.
첫 번째로, 지역별로 어르신 콘텐츠 제작 교육을 정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단순한 스마트폰 교육을 넘어서 콘텐츠 제작, 블로그 개설, 영상 편집 등의 기술을 체계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두 번째로, 마을 커뮤니티 블로그나 유튜브 채널 운영을 위한 소규모 예산을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데이터 요금, 교통비, 인쇄비용, 운영비 등 실질적인 비용을 보조할 수 있어야 한다. 세 번째로는 세대 간 협업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청년 봉사자나 대학생과 고령층이 팀을 이루어 마을 콘텐츠를 만들도록 유도하면, 기술은 자연스럽게 전수되고 공동체 내 세대 교류도 활성화된다.
디지털 소외계층이 콘텐츠의 생산자가 되면, 기술 격차 해소는 물론 지역 문화의 재발견과 정체성 강화까지 동시에 이뤄낼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한 복지 정책이 아니라, 공동체를 살리는 문화 정책의 하나로 접근돼야 한다.
이처럼 단순한 스마트폰 교육이 마을 전체의 자긍심과 삶의 태도를 바꿀 수 있음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블로그는 그저 기록의 수단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감정과 기억, 연결을 저장하는 창이 되었고, 디지털 소외계층의 주체적 삶을 상징하는 상징물이 되었다. 앞으로 더 많은 마을에서 이와 같은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