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중학생이 본 디지털 소외계층 어르신들의 삶, 그 안의 불편한 진실
디지털 문명의 발전 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공공행정, 금융, 교육, 의료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디지털 전환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으며, 디지털 기기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하지만 기술이 사회 전반을 관통하는 이 흐름에서 모두가 같은 속도로 걷고 있지는 않다. 특히 지방 농촌에 거주하는 고령층, 이른바 디지털 소외계층은 지금도 디지털 정보와 기능에서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한 지방 중학생의 눈을 통해 조명하는 일이 있었다. 충청북도 제천시에 거주하는 중학교 2학년 학생 김지훈(가명) 군은 학교 사회 수행평가 과제로 ‘우리 마을의 디지털 생활 조사’를 주제로 선택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어르신들이 휴대폰을 잘 사용하는지를 체크하는 과제라고 여겼지만, 실제 인터뷰를 하면서 그는 생각보다 더 깊고 복잡한 현실의 벽을 마주하게 되었다.
김 군이 기록한 마을 어르신 다섯 분과의 인터뷰 내용은 단순히 ‘기계를 못 다룬다’는 기술적 불편을 넘어, 자존감 상실, 고립감, 세대 간 단절까지 드러내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본 글에서는 그가 직접 만난 디지털 소외계층 어르신들의 생생한 현실, 그리고 그 속에서 청소년으로서 느낀 변화와 사회적 제안을 중심으로 풀어보자.
디지털 소외계층 어르신들의 현실: ‘모르는 게 아니라 두려운 것’
김지훈 군은 자신의 마을회관과 인근 노인정에서 총 다섯 분의 어르신들을 인터뷰했다. 인터뷰 대상자들은 72세에서 84세 사이의 고령자로, 대부분은 스마트폰은 가지고 있었지만 전화 기능 외에는 거의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78세의 김 모 할머니는 “문자가 오면 그냥 무시해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중요한 거면 우리 딸이 알아서 알려주겠지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다른 어르신은 “뉴스에 보이스피싱 이야기를 들으니까 아예 앱은 안 건드리게 돼요. 잘못 누르면 통장 돈이 다 빠져나간다던데요?”라고 답했다.
인터뷰를 통해 김 군은 단순히 기술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기술을 사용하면서 겪은 부정적 경험이나 막연한 불신감이 어르신들의 심리적 방어기제로 작용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특히 스마트폰의 다양한 기능 중 하나라도 실수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공포는, 어르신들에게 ‘배우는 행위 자체’를 포기하게 만드는 심리적 기제로 작용하고 있었다.
그는 메모지에 이렇게 적었다.
“어르신들은 잘 몰라서 못 하는 게 아니라, 틀리는 게 부끄럽고 두려워서 아예 시도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매일 앱을 수십 개씩 쓰지만, 어르신들은 그 하나의 버튼조차 ‘실수’가 될까 봐 건드리지 못했다.”
디지털 소외계층 어르신들의 자존감과 감정: “나는 배울 자격이 없어요”
인터뷰 중, 김 군은 “스마트폰을 배우고 싶으신가요?”라는 질문을 공통으로 던졌다. 예상과는 다르게, 다섯 명 모두 “배우고는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바로 이어진 말은 “근데 배워도 금방 까먹어요”, “나이 들어서 뭘 배우겠어요”, “자식들한테 물어보는 것도 미안해서요”였다.
한 할아버지는 “예전에 마을에서 한 번 교육을 들은 적 있었는데, 선생님이 ‘이거쯤은 다 아시죠?’라고 말하길래 더는 손을 들 수가 없었다”며 수업을 중도에 나왔다고 털어놓았다.
김 군은 이 과정에서 디지털 소외계층 어르신들이 기능 이전에 ‘자존감’에서 상처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게 되었다. 그는 “기술을 몰라서 부끄럽다는 말이 아니라, 사회에서 점점 쓸모없는 존재로 여겨지는 것 같아서 외롭다고 느끼는 분들이 많았다”고 적었다.
디지털 전환은 단순한 문명의 진보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조작하고, 선택하고, 참여하는 일상의 권리와 연결된다. 하지만 기술이 너무 빠르게 앞서가고, 고령층에게 학습의 기회와 감정적 배려 없이 사용만을 강요할 경우, 그 결과는 고립과 자책, 그리고 자기 검열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디지털 소외계층에 대한 청소년의 시선 변화: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같이 배우는 것’
김 군은 인터뷰 이후, 자기 할머니의 스마트폰을 유심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평소에는 그냥 전화 받는 용도라고만 생각했지만, 할머니는 “카카오톡을 누르고 싶지만, 누르면 어디로 가는지 몰라서 무서워”라고 말했다. 김 군은 그날 저녁 직접 할머니의 화면을 정리해주고, 카카오톡만 열리도록 단축 앱을 만들어드렸다.
며칠 후, 할머니는 “손주야, 내가 너한테 톡 보냈다!”며 문자 메시지를 보냈고, 그 내용은 “고맙다”는 짧은 인사였다. 그 순간, 김 군은 기술 하나를 알려준 것이 아니라, 할머니가 다시 세상과 연결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이후 그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디지털 손주단’이라는 봉사활동 프로젝트를 기획해 제출했다. 1인 1조 매칭을 통해 어르신과 청소년이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반복 학습을 하고, 앱 활용, 보이스피싱 예방 교육 등을 함께 진행하는 형태였다.
“우리가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같이 배운다고 생각하면 어르신도 부담이 없을 것 같아요. 나는 기다려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는 보고서 말미에 이 문장을 적어냈다.
디지털 소외계층 어르신과 청소년이 함께 만드는 포용 사회를 위하여
김지훈 군의 경험은 단순한 학교 과제가 아니다. 그것은 디지털 소외 문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과 접근 방식을 제안하는 사회적 메시지다. 지금까지의 정책은 기기 보급, 기능 교육, 일회성 캠페인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사람 중심, 감정 중심, 관계 중심의 디지털 포용 구조로 나아가야 할 시점이다.
우선, 지방 중소도시나 농촌에서 청소년과 고령층을 연결하는 ‘세대 연계 디지털 멘토링’ 제도화가 필요하다. 교육청과 지방정부, 복지기관이 함께 기획하고, 청소년에게는 봉사시간을, 어르신에게는 반복 학습과 정서적 지지를 제공할 수 있다.
또한 디지털 소외계층의 학습 이력을 추적할 수 있는 디지털 학습 패스포트 시스템을 도입하면, 개인별 반복 수준을 파악하고 맞춤형 교육 콘텐츠 제공이 가능하다. 여기에 AI 튜터를 연계해 복습용 설명을 음성으로 제공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디지털 포용은 곧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문제”라는 사회적 인식 전환이다. 기술은 사람을 연결해야지, 밀어내는 것이 되어선 안 된다. 그리고 그 변화의 출발점은, 한 중학생의 작은 관찰과 따뜻한 손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