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소외계층 농촌 어르신이 말하는 ‘내가 키오스크를 싫어하는 진짜 이유’
무인 키오스크는 빠르고 편리한 주문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카페, 분식점, 공공기관, 병원, 터미널 등 일상 속 거의 모든 장소에서 볼 수 있는 이 기계는 디지털 전환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이 편리함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다.
특히 농촌 지역에 거주하는 고령층 어르신들, 이른바 디지털 소외계층에게 키오스크는 결코 ‘편리한 기술’이 아니다. 오히려 당황과 무력감, 심지어 수치심을 유발하는 불편한 장치가 되곤 한다.
많은 사람들이 “왜 어르신들은 키오스크를 어려워할까?”라는 질문을 단순히 사용법이나 눈 나쁨, 손 느림 같은 물리적 이유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이면에 더 깊은 정서적·사회적 원인이 숨어 있다.
이 글에서는 농촌 마을 어르신들이 직접 말하는 ‘내가 키오스크를 싫어하는 진짜 이유’를 통해, 디지털 소외계층이 기술과 마주할 때 겪는 심리적 저항과 실질적인 한계,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교육과 정책의 방향에 대해 다각도로 살퍼보고자 한다.
디지털 소외계층이 마주한 키오스크 앞의 두려움과 수치심
“기계 앞에만 서면 머리가 하얘져요.” 경북 봉화군에 거주하는 78세 김모 어르신은 키오스크 경험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마트 내 푸드코트에서 김밥을 사려다 키오스크 앞에서 3분 넘게 서 있었고, 결국 줄 뒤에 선 사람이 한숨을 쉬는 걸 듣고 아무것도 못 사고 돌아섰다.
디지털 소외계층, 특히 농촌 고령자는 단순히 ‘기계를 모른다’가 아니다. 기계 앞에서 느끼는 불안과 압박,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된다는 죄책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두려움’으로 변한다.
“실수하면 돈 빠져나가는 건 아닌가?” “이걸 잘못 누르면 뭐가 나올지 몰라서 무서워.” 어르신들은 기계의 예측 불가능성과 잘못 눌렀을 때 되돌릴 수 없다는 불안감 때문에, 키오스크 이용 자체를 회피하게 된다.
또한 어르신들에게는 기계 앞에서 ‘누군가의 눈치를 본 경험’이 트라우마로 남는 경우도 많다. 누군가는 빨리 하라는 눈치를 줬고, 누군가는 직접 도와주기보다 옆에서 무표정하게 지켜봤다. 이 모든 경험이 누적되며, 결국 어르신들은 “나는 이런 데에선 밥 안 사 먹는다”, “애초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선택을 한다.
디지털 소외계층 어르신의 키오스크 기피, ‘속도’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중 하나는 “어르신들이 느려서 키오스크를 못 쓴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속도보다도 키오스크라는 비대면 시스템이 어르신들에게는 ‘관계 단절’로 느껴진다는 점이 더 크다.
과거 어르신들의 일상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시장에서는 상인과 눈을 마주치며 물건을 사고, 식당에서는 “된장찌개 하나요” 한마디로 주문이 끝났다. 그러나 키오스크는 말도 없고, 표정도 없으며, 기다려주지도 않는다. 이런 무표정한 기계 앞에서 어르신은 스스로 사회적 존재가 아닌 느낌, 배제된 존재로 전락한 듯한 감정을 경험한다.
어떤 어르신은 “나는 식당에 가면 사장님 얼굴을 보고 밥을 먹었는데, 이젠 기계만 보고 먹으니까 밥맛이 없다”고 했다. 또 어떤 분은 “기계가 말을 걸지 않으니 내가 잘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더라”고 말했다.
결국 키오스크에 대한 거부감은 단순히 기능적 난이도가 아니라, 정서적 소외와 인간적 상호작용의 부재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디지털 소외계층에게는 ‘할 수 있는지’보다 ‘누가 나와 함께하는지’가 더 중요할 것이다.
키오스크 앞에서 소외된 디지털 소외계층, 일상에서 무엇을 포기하게 되는가
키오스크에 대한 거부감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다. 그것은 곧 일상의 포기로 연결된다. 병원 접수, 영화 예매, 음식 주문, 교통 수단 예약 등 점점 더 많은 생활 서비스가 무인 시스템으로 대체되고 있는 지금, 기계를 못 쓴다는 이유만으로 이용 자체를 포기하게 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충남 홍성군의 한 어르신은 “병원 접수도 기계로만 받는다 해서, 그냥 아프면 안 간다”고 말했다. 또 다른 분은 “배가 고파도 줄 서 있는 키오스크 앞에서 눈치 보느니 집에 가서 밥 먹는다”고 했다. 이러한 경험은 누적될수록 디지털 소외계층의 사회적 위축감, 정서적 고립감, 자존감 저하로 이어진다.
더 심각한 건, 키오스크가 보편화될수록 소외계층의 ‘서비스 접근권’ 자체가 침해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곧 기술이 새로운 불평등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증거이며, “기술이 발전할수록 모두가 함께 가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우리 사회에 던져본다.
디지털 소외계층의 키오스크 공포,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기계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의 디지털 설계 철학이다. 키오스크가 일방적인 명령형 UI가 아니라, 사용자의 실수나 이해 부족을 고려한 유연한 안내와 반응을 제공해야 한다. 예를 들어, “처음 사용하신다면 이 버튼을 눌러주세요”처럼 초보자를 위한 단계별 모드를 기본으로 제공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둘째, 실제 기계와 똑같은 모형으로 연습할 수 있는 ‘키오스크 체험 공간’을 마을 단위로 설치하고, 반복 학습이 가능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특히 “실수해도 되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중요하며, 디지털 멘토와 함께 연습하며 자신감을 쌓을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청년과 어르신이 함께 키오스크를 연습하는 ‘디지털 친구 프로그램’도 매우 효과적이다. 동행 학습, 대화 중심의 학습은 기술뿐 아니라 관계 회복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마지막으로, 무인 시스템과 유인 창구의 병행 운영을 법제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고령자나 장애인 등 디지털 접근 취약계층을 위한 예외 창구 또는 도우미 배치 의무 규정이 공공기관, 대형 프랜차이즈, 병원 등에서 제도화되어야 한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그것이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면 올바른 진보라 할 수 없다. 디지털 소외계층이 기계 앞에서 움츠러들지 않고, 당당하게 선택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