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소외계층의 현실, 기술 접근성과 노인 인권은 어떤 관계인가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디지털 기술을 사용한다. 은행 업무는 앱으로 해결하고, 음식은 키오스크로 주문하며, 정부 민원도 비대면으로 처리한다. 이처럼 디지털은 단순한 편의성을 넘어서 사회 참여의 기본 조건이자 권리 실현의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이 기술을 똑같이 누릴 수 있는 건 아니다.
특히 디지털 소외계층, 그중에서도 고령층은 기술의 중심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기계를 다룰 줄 몰라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거나, 병원 예약을 못 해 치료 시기를 놓치고, 대중교통 이용조차 어렵다는 불만은 이제 흔한 사례가 되었다. 이 같은 현실은 단순한 불편함이나 기술 격차로 설명될 수 없다. 그것은 바로 인권의 문제다.
디지털 기술이 보편화된 시대에, 이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는 이유로 기본적인 삶의 권리를 제한받는다면, 그건 명백한 사회적 차별이자 인권 침해다. 이 글에서는 디지털 기술 접근성과 노인 인권의 상관관계를 살펴보고, 디지털 소외계층이 겪는 현실과 우리가 고민해야 할 사회적 책임에 대해 구체적으로 조명해보겠다.
디지털 소외계층에게 기술은 ‘편의’가 아니라 ‘권리’의 문제다
정부는 디지털 포용을 강조하면서 전국 곳곳에 공공 와이파이를 설치하고, 키오스크, 무인점포, 모바일 기반의 공공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러한 기술 구조 속에서 배제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집단이 바로 노년층 디지털 소외계층이다.
이들은 단지 기술을 모르기 때문에 배제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는 이미 디지털 사용 능력을 기본값으로 간주하고, 이를 전제하지 않으면 정상적인 생활이 어렵도록 시스템을 바꿔버렸다. 다시 말해, 기술을 사용하지 못하면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게 만드는 구조가 만들어졌고, 그 구조는 ‘모든 국민이 정보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인권 원칙과 충돌하고 있다.
디지털 소외계층이 느끼는 소외감은 점차 자기 검열과 심리적 낙인으로 번진다. “나는 못 한다”,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다”, “나는 폐 끼치는 존재다”라는 생각은 단순한 격차의 문제가 아니라, 존엄성의 침해로 이어지는 심각한 인권의 영역이다. 기술이 인권의 기준이 되어선 안 된다. 기술은 권리 실현의 도구가 돼야 한다.
디지털 소외계층이 겪는 현실은 ‘접근성’이 아닌 ‘배제성’의 문제다
디지털 소외계층에게 가장 큰 문제는 정보 접근의 격차가 아니라, 그 격차로 인해 사회 전체에서 점점 더 밀려난다는 배제의 감각이다. 병원 예약을 모바일로만 받고, 은행 창구는 줄이고, 복지 서비스도 앱 기반으로만 안내하면, 고령층은 결국 시스템 밖에 서게 된다.
한 예로 2023년 한 지방 도시에서 실시된 조사에 따르면, 75세 이상 노인의 64%가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공공서비스를 포기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그 중 상당수는 정부 보조금, 건강검진, 의료 혜택 같은 필수 서비스였으며, 이는 곧 사회권, 건강권, 정보권과 직결된 문제다.
이런 현실을 단순히 ‘적응하지 못해서’라고 치부할 수 없다. 이는 시스템 설계가 특정 연령층이나 능력군을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졌기 때문이며, 이로 인해 노년층은 디지털 인프라로부터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있다. 디지털 소외계층의 문제는 결국 사회 설계에서의 고려 부족, 배제적 기술 환경이라는 구조적인 인권 문제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디지털 소외계층의 인권을 위한 기술 설계는 가능하다
기술은 원래 중립적이지만, 어떻게 설계되느냐에 따라 누군가는 혜택을, 누군가는 차별을 받게 된다. 디지털 소외계층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기술 보급을 넘어서 인권 중심의 기술 설계와 정책 운영이 필요하다.
첫째, 서비스의 최소 한계선은 언제나 비디지털 수단도 함께 제공하는 원칙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키오스크만 있는 음식점이라면 직원 주문 창구도 병행 운영되어야 하며, 병원은 앱 예약과 함께 전화 및 대면 접수를 유지해야 한다.
둘째, 모든 공공서비스에는 ‘디지털 접근 약자 전용 메뉴’ 또는 ‘고령자 모드’를 제공하여 화면 구성과 절차를 단순화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이러한 기능을 도입한 지자체에서 고령층 이용률이 크게 증가했다는 사례도 존재한다.
셋째, 디지털 권리는 ‘배워야 하는 기술’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보장해야 할 공공 책임’**이라는 관점 전환이 필요하다. 디지털 교육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인권 실현을 위한 필수 인프라로 간주되어야 하며, 고령층에게는 반복적이고 정서적으로 친화적인 방식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기술이 모두를 품을 수 있는 설계가 이루어질 때, 디지털 소외계층의 인권은 비로소 회복되기 시작한다.
디지털 소외계층의 인권 보장을 위한 사회적 연대와 정책 방향
디지털 기술이 사회 시스템의 중심이 되면서, 기술 격차는 곧 사회적 불평등이 된다. 고령층, 장애인, 저소득층, 저학력 계층 등 다양한 디지털 소외계층이 더 이상 정보를 읽을 권리, 소통할 권리, 안전하게 살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상황은 민주 사회가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책 수준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 첫째, 디지털 포용 기본법 또는 정보 접근권 보장법과 같은 입법을 통해, 기술이 사회적 배제를 유발하지 않도록 하는 법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둘째, 각 지자체는 디지털 소외 실태조사를 정례화하고, 그 결과를 기반으로 맞춤형 교육과 시스템 개선을 실행해야 한다.
셋째, 시민사회와 지역 커뮤니티, 대학, 청년단체 등과 협업하여 디지털 교육을 넘어서 '디지털 권리 옹호 활동'으로 확장하는 모델이 필요하다. 고령층이 단순히 배우는 수동적 주체가 아니라, 자신의 권리를 목소리 내고 요구할 수 있는 시민 주체로 전환되어야 한다.
결국 디지털 인권은 더 이상 미래의 과제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당장,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잃고 있고, 누군가는 지켜야 할 가장 현실적인 권리다. 그리고 우리는 이 권리를 함께 보장할 책임이 있는 공동체일 것이다.